• {url:./treeAjax?siteMode=prod}

수경재유고(水鏡齋遺稿)

자료명 수경재유고(水鏡齋遺稿) 저자 琴鳳儀(朝鮮) 撰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4-6203 MF번호 MF35-2908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集部/別集類/詩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전자도서관(SJ_LIB)
서지 전자도서관 해제 전자도서관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상세정보 해제 xml

닫기
자료제공처전자도서관
번호113930
서명水鏡齋遺稿
저자琴鳳儀(朝鮮) 撰
판사항倣全史字木活字版
간사사항光武6(1902)
청구번호K4-6203
MF번호MF35-2908
형태사항線裝 2卷 1冊:四周雙邊, 半郭 22.1 × 15 cm, 有界, 半葉 10行 20字, 註雙行, 上三葉花紋魚尾;29.9 × 19.4 cm
인기印 : 李王家圖書之章
안내정보
해제~ 13-0340 * 수경재유고 (水鏡齋遺稿) 조선 중기의 학자 금봉의(琴鳳儀, 1668∼1697)의 시문집. 상하권 1책. 목활자본. 저자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순서(舜瑞), 호는 수경재(水鏡齋). 아버지는 도명 (道鳴)이며,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로 속(涑)의 딸이다. 송시열 (宋時烈)의 문인이며, 일찍부터 성학(聖學)에 몰두하고 과거에는 뜻이 없어 시골에 숨어살면서 세간의 영욕을 멀리하였다. 《소학》·《가례》·《심경》·《근사록》 등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스승이 훈계한 무잡언(無雜言)·무잡행(無雜行)·무잡사(無雜思)의 세가지 조목에 지극히 심복하여 위기(爲己)의 학문에 힘썼고, 특히 이기체용(理氣體用)의 묘(妙)에도 조예가 깊었음이,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 (權尙夏)와의 질의응답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1902년(광무 6) 후손 석민 (錫民)과 창주(昌柱)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병선(宋秉璿)의 서문과 권말에 석민의 발문이 있다. 상권에 시 18수, 서(書) 1편, 잡저로 설(說) 4편, 어록 1편, 일기 1편, 제문 7편, 하권은 부록으로 제문 2편, 행장·묘표·상소문 각 1편이 실려 있다. 서(書)는 〈상우암선생문목 上尤菴先生問目〉으로 예설에 대하여 송시열에게 질의한 내용이다. 잡저 중 〈유시인설 諭時人說〉에서는 주자의 학설을 신봉하는 송시열의 큰 공로를 찬양하는 동시에 윤휴(尹<휴0x7D21>)의 “의리는 무궁하니 어찌 꼭 주자만 알고 내라고 모르겠느냐.”는 등의 망언을 지적, 그를 난신적자(亂臣賊子)로 매도하면서, 공자를 알고자 하면 주자를 보고 주자를 알고자 하면 송시열을 보라고 논하고 있다. 〈독서설 讀書說〉에서는 도(道)의 묘는 무형한 것이나 오직 도를 싣고 있는 문으로써 도를 구하면 이(理)가 드러나며 도가 밝혀진다고 하면서, 문은 바로 사서(四書)와 육경(六經)이며 선현들의 문집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 〈취선설 取善說〉에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천하가 넓고 사기(事機)가 번거로운 것을 우려하기보다는 천하의 중지를 모으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하며, 중지를 모으는 데는 가까운 곳의 선(善)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이면 먼 곳의 선도 다투어 모여들 것이라고 논하였다. 〈용현설 用賢說〉에서는 신하의 현부 (賢否)에 따라서 국가의 치란이 좌우되므로 소인들의 사설(邪說)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은 17세기 정치상과 사회문제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료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도서에 있다. 〈鄭求福〉 @ ^
청구번호_정렬01_K4-6203
자료분류고서 > 장서각 본도서 > 한국본 > 集部 > 別集類 > 詩文
CLASSCODEJAKDBB
PDF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