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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보첩(國朝譜牒)

자료명 국조보첩(國朝譜牒) 저자 종부시(宗簿寺) 편(編)
자료명(이칭) 國朝譜牒 저자(이칭) 宗簿寺(朝鮮) 編
청구기호 K2-911 MF번호 MF35-1887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璿源譜/系譜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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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95(정조 19년)
· 청구기호 K2-911
· 마이크로필름 MF35-1887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종부시(宗簿寺)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8.6 X 28.6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8.8×18.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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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95년(정조 19) 宗簿寺에서 全州李氏의 始祖인 新羅 司空 李翰으로부터 정조까지 조선 왕실의 宗統을 중심으로 기록한 왕실 보첩이다.
서지사항
표지에 주색 비단 테두리를 두른 흰색 비단 제첨에 서명을 필사하였으며 민무늬 청색 비단을 冊衣로 사용하였다. 空隔紙와 본문 모두 두꺼운 壯紙를 사용하였으며 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를 그린 주홍색 필사 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다. 본문에 종이를 덧대어 수정한 흔적이 있다. 장서각 소장 동일 서명 『국조보첩』(K2-912~913)과 장황이 동일하나 피휘지를 모두 제거한 흔적이 있다. 작성 시기는 당시 주상 전하(정조)의 부모인 사도세자의 추상존호와 혜경궁의 가상존호를 올린 해인 “19年 乙卯”라는 기록을 통해 1795년에 작성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1679년(숙종 5) 이후 진행된 왕실 족보의 대대적인 수정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681년(숙종 7) 8월 초에 수정이 마무리된 『國朝御牒』의 체제를 따랐다. 1680년(숙종 6)에 간행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어첩으로서 조선 전기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이는 장서각 소장 『朝鮮國譜』(K2-1077)의 장정 형태와 기재 방식을 비교해 보면 숙종, 영조, 정조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어첩의 시대적 변화상을 밝힐 수 있다. 『조선국보』의 경우, 11절 22면의 절첩형으로 裝幀되었고, 크기도 48×29cm이다.
본서는 크게 先系와 世系, 列聖八高祖圖로 구분된다. 첫째, 선계의 수록 대상은 시조에서부터 17세 將軍 陽茂(穆祖의 父)까지이다. 先祖의 諱와 관직명만을 주로 기록하였다. 특히 시조와 16세, 17세의 경우에만 배우자의 본관, 부의 관직과 이름 등의 기록이 보인다. 영조 대에 작성된 『국조보첩』과 달리, 정조 대에 작성된 이 보첩은 시조와 시조비에 관한 내용이 추가되었다. 1771년(영조 47) 10월 16일 시조 이한과 비 경주김씨의 신위를 만들어 경희궁 資政殿에 봉안하고 영조가 親祭한 후 1771년 11월 26일에 전주 경기전의 북쪽에 조경묘를 설치하고 이곳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추가되었다. 둘째, 세계의 수록 대상은 18세 穆祖로부터 작성 당시의 주상 전하(정조)까지이다. 각 왕별로 왕과 비, 왕의 자녀 순으로 기록하였다. 왕의 경우, 휘, 자, 존호, 생년일시와 탄생 장소, 왕세자 책봉일, 즉위일, 승하 일시와 승하 장소, 재위년, 추존 시기, 춘추, 시호, 총 자녀 수, 능호 등을 기재했다. 왕비의 경우, 존호, 본관, 부의 관직과 이름, 생년과 책봉일, 승하 일시와 승하 장소, 춘추, 시호, 소생 자녀수, 능호 등을 기록하였다. 왕자녀의 경우, 왕위 계승자를 먼저 적고, 그다음으로 嫡庶를 구분한 후 先男後女 방식으로 작성하였다. 대군, 공주, 군, 옹주의 순으로 출생 순서를 따라 기록하였으며, 반드시 생모의 신분을 밝혔다. 대군과 군의 경우, 출생 순서 밑에 이름과 봉작명을 적었다. 공주와 옹주의 경우, 출생 순서와 봉작명 이외에 부마의 성명과 부마의 尉號를 기록했다. 기록한 내용이 불확실한 경우에는 따로 細主를 달아 ‘臣謹按’이라 하며 典據를 밝혀 논증했다.
정조 대에 작성된 본서는 영조 대에 작성된 『국조보첩』과 달리, 역대 왕의 세실이 언제 정해졌는지를 밝히고자 하였고, 1782년(정조 6)에 작성된 역대 왕별 『국조보감』의 권수를 표기했다. 특히 「열성팔고조도」가 정조 대에 작성된 『국조보첩』에 새로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1783년(정조 7) 2월 25일 정조는 그동안 개별적으로 작성되어 따로 보관되었던 팔고조도를 『국조보첩』과 『璿源系譜記略』의 세계 뒤에 붙이도록 하였다. 이 보첩에는 태조부터 주상전하(후일의 정조) 팔고조도까지 역대 24왕의 내외팔고조도가 수록되었다. 특히 성종, 선조, 경종, 영종, 진종, 장헌세자, 주상전하는 모두 생부와 생모를 밝힌 「열성팔고조도」가 추가로 한 건씩 더 작성되었다. 장헌세자 팔고조도가 주상전하 팔고조도 앞에 붙여져 있는 점이 주목된다. 이와 함께 각 왕과 왕비의 책봉이나 가례, 죽음 등과 같은 생애 사건이 일어난 연월일시를 영조 대 작성된 보첩보다 더욱 상세히 밝혔다.
특성 및 가치
조선시대 왕실 가족의 존재 양상을 시대별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으므로 조선시대 왕실 가족사 연구와 전주이씨 璿派 가문 연구에 기초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URL
왕실의 족보」, 김영심, 『규장각 소장 왕실자료 해제·해설집 1』,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5.
김일환, 원창애, 홍우의, 『장서각 소장 왕실보첩류 목록 및 해제』, 민속원, 2010.

집필자

김지영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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