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녕전야진작홀기(강령뎐야진쟉홀긔(康寧殿夜進爵笏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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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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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시기 | 1873(고종 10년) |
· 청구기호 | K2-2406 |
· 마이크로필름 | MF35-1345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 단체/기관명 | 담당자 | 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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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禮曹) 편(編) |
형태사항
· 크기(cm) | 24.0 X 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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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필사본(筆寫本) |
· 장정 | 첩장(帖裝) |
· 수량 | 1첩(帖) |
· 인장 |
藏書閣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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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정보
내용
정의
1873년(고종 10)에 景福宮 康寧殿에서 대왕대비전에 進爵하는 의식 때 사용된 笏記이다.서지사항
붉은색 비단으로 장정되어 있다. 帖의 형태로 제작되었으나, 書背 부분이 비단으로 장정되어 있다. 제첨에는 제목 외에 ‘癸酉’가 필사되어 있는데, 1873년으로 추정된다. 본문 첫 장에는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다. 주사란으로 한 면에 4행씩 정서되어 있으며, 각 행마다 서미에는 노란색 종이로 작성된 첨지가 붙어 있다.체제 및 내용
본서는 1873년 대왕대비전에 올리는 進爵宴을 위해 작성된 것이다. 이에 앞서 1872년 12월 判宗正卿 李最應 등 종친부 소속 종친들이 연명으로 대왕대비와 국왕에게 존호를 올리자고 건의하였다. 이어 의정부의 건의가 있었고, 시·원임 대신을 중심으로 百官들도 역시 庭請하며 이를 요청한 바 있다. 정청이란 국가의 중대사에 대해 議政이 백관들을 거느리고 궁정에 나와서 啓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며칠 동안 계속된 관원들의 요구는 결국 같은 해 12월 20일 국왕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같은 날 존호를 올리기 위한 都監이 설치되었다. 1873년에 대왕대비전에 올려진 진작연은 이의 연장선상에서 행해진 잔치로, 進爵所의 관원은 尊號都監의 관원이 겸하였다.진작연에서 첫 번째 잔은 국왕이 직접 올리고, 두 번째 잔은 중궁전에서 올리도록 결정되었으며, 처소는 康寧殿으로 결정되었다. 본서의 서명에 강녕전이 표기된 것은 이 때문이며, 홀기는 저녁에 진작하는 예에 따라 작성하도록 지시하였기에 ‘夜進爵’이라 표기된 것이다. 진작연과 관련해서 같은 해 3월 27일과 4월 15일에 習儀가 행해졌고, 4월 18일에 奠爵禮가 거행되었으며, 4월 20일에 會爵禮가 거행되었다. 본서는 4월 20일에 행해진 회작례 때의 홀기로, 행사의 진행 절차와 절차에 따른 음악 연주, 각 소임 관원들의 역할 등을 정리하였다. 한글로 작성된 것으로 보아 내전에서 사용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조선 왕실에서 행하는 중요한 연회 중 하나인 진작연의 구체적인 절차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시기 진작연과 관련해서는 장서각에 소장된 『進爵儀軌』(K2-2861)와 규장각에 소장된 동명의 의궤(奎14375-2)가 참고가 된다. 이 밖에도 앞선 시기인 1828년(순조 28)에 시행된 진작연과 관련해서도 다수의 의궤가 전하고 있어 비교 분석을 통해 의례의 변화상을 추적할 수 있다.참고문헌
『高宗實錄』
집필자
이근호
범례
-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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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