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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漢書)

자료명 한서(漢書) 저자 반고(한)(班固(漢)) 찬(撰), 능치륭(명)(凌稚隆(明)) 집교(輯校)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반고(한)(班固(漢)) 찬(撰)
청구기호 K2-8 MF번호 MF35-1366~1370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正史類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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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세기(世紀) 이후(以後)
· 청구기호 K2-8
· 마이크로필름 MF35-1366~1370
· 기록시기 19世紀 以後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반고(班固)(한(漢))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3.0 X 21.5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00권(卷) 30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8×15.5cm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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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581년(만력 9) 凌稚隆班固의 『漢書』에 대해 明代까지 이루어진 諸家의 평론을 모아서 편찬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卷首題, 版心題는 모두 ‘漢書’이다. 권수제를 따라 서명을 ‘漢書’라고 하였지만, 실은 중국본 『漢書評林』을 저본으로 조선에서 간행하였다. 『한서』의 역대 중국본으로는 1583년(만력 11) 무렵에 간행된 凌稚隆의 自刻本, 만력 연간의 萃慶堂 간본, 만력 간본, 雲林 積秀堂 간본이 있다. 조선본은 자각본과 그 계열인 췌경당본을 저본으로 하되, 평림본의 특징인 欄上의 평론은 모두 제거되었다.
체제 및 내용
凌稚隆은 原名이 遇知이며, 字는 以棟, 號는 磊泉으로, 명대 유명한 출판 지역이었던 湖州 烏程(지금의 浙江 吳興)에서 태어났다. 본서의 체제는 반고의 『漢書』와 마찬가지로 帝紀 12권, 表 8권, 志 10권, 列傳 70권, 총 10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인용된 인물은 後漢 2인, 2인, 1인, 13인, 56인, 4인, 64인, 총 142인이며, 인용된 서목은 131종에 달한다. 凌稚隆은 이전에 간행된 다양한 『한서』 판본을 토대로 본서를 편찬했는데, 그중에서도 宋本을 저본으로 하되 正德·嘉靖 연간에 간행된 國子監本을 참고하여 반복적으로 수교하였다. 간본마다 필획이 다른 경우에는 송본을 따르되 문자가 다른 경우에는 “어떤 간본에는 某字가 某字라고 되어 있다.”라고 부기하였다. 본서의 특징은 각종 판본을 대조하여 치밀하게 교정하고, 당대까지 편찬된 『한서』에 대한 다양한 논평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평은 欄上과 本文에 첨가되었는데, 조선본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특징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조선에서 본서가 처음 간행된 시기는 1690년(숙종 16) 무렵으로, 당시 현종실록자본으로 인출되었다. 이후 이를 저본으로 하여 1761년(영조 37) 이전 嶺營本이 간행되었다. 장서각 소장본은 紙質과 補板을 미루어 볼 때, 嶺營에서 간행한 목판을 이용하여 19세기 이후에 인출한 後刷本으로 추정되며, 補板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조선에서 간행된 『한서』는 임란 이전의 금속활자본 3종(庚子字, 前·後期 初鑄甲寅字本)과 임란 이후의 『한서평림』을 제외하면 대부분 選集本의 형태로 되어 있다. 따라서 본서는 『한서』의 내용을 온전하게 수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임란 이후 『한서』 간본이 대대적으로 소실되었던 상황에서 조선 후기 학인들에게 중요한 『한서』 학습서로 읽혔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조선에서 중국본을 활용했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

집필자

김소희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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