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구(準戶口)
· 서지정보 서지 xml
한글문서명 | 준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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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서명 | 準戶口 |
이명(한글) | |
이명(한자) | |
수취(한글) | 한성부 |
수취(한자) | 漢城府 |
발급(한글) | 박태갑 |
발급(한자) | 朴台甲 |
찬자(한글) | 미상 |
찬자(한자) | 미상 |
발급목적 | 漢城府에서 발급한 朴台甲의 준호구 |
간행년(서기력) | 英祖29 1753 - |
유형 | 고문서 |
크기 | 59x61cm |
관인수 | |
청구기호 | |
소장처 | 원소장처와 동일 |
소장처1 | 忠淸南道 |
소장처2 | 扶餘郡 |
소장처3 | 恩山面 佳谷里 朴柄鎬 |
MF | 35-008155 |
자료유형 | 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
해제정보
해제작성자 | 정수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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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작성일 | 2002-05-28 |
한글문서명 | 호적류12 |
한자문서명 | 戶籍類12 |
간행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해제작성언어 | 국한문 혼용 |
해제내용 |
호적류12
정수환
【정의】
1723년(景宗3)에 朴台甲이 癸卯년의 호적대장에 의거 漢城府로부터 발급받은 準戶口
【내용】
[주제]
한성부에 거주하던 幼學 박태갑이 한성부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그는 한성부의 남부 훈도방 주자동계의 2통 4호에 거주하였다. 준호구에 의하면 증조에서 박태갑에 이르는 가계는 ‘朴尙郁→朴慶後→朴興新’으로 나타난다. 그의 外祖는 靑松 沈氏 沈檀이었으며 44세의 어머니 沈氏를 모시고 살고 있다. 박태갑의 직역은 幼學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의 父는 通德郞이었으며, 祖는 ‘嘉善大夫兵曺參判兼同知義禁府事’까지 역임하였을 뿐 아니라 曾祖 또한 ‘通政大夫行利川都護府事廣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의 고관을 역임하면서 대대로 仕宦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外家 역시 名門家로서 박태갑은 이 당시 상당한 통혼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奴婢秩은 ‘率奴婢秩’과 ‘逃奴婢秩’로 구분하여 기재함으로써 노비에 대한 구체적인 근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용어]
[인물]
朴尙郁은 1651년(孝宗 2)에 生員試에 入格한 후 관직이 나주목사에 이르는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지명]
한성부는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 서, 남, 북’의 4방위와 아울러 중부를 포함했다. 한성부에는 지방과는 달리 ‘坊’, ‘契’로 지칭되는 하부행정단위가 존재하고 있었다.
【특징】
【비고】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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