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구(準戶口)
· 서지정보 서지 xml
한글문서명 | 준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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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서명 | 準戶口 |
이명(한글) | |
이명(한자) | |
수취(한글) | 한성부 |
수취(한자) | 漢城府 |
발급(한글) | 박태갑 |
발급(한자) | 朴台甲 |
찬자(한글) | 미상 |
찬자(한자) | 미상 |
발급목적 | 漢城府에서 발급한 朴台甲의 20세시 준호구 |
간행년(서기력) | 景宗3 1723 - |
유형 | 고문서 |
크기 | 56x88cm |
관인수 | |
청구기호 | |
소장처 | 원소장처와 동일 |
소장처1 | 忠淸南道 |
소장처2 | 扶餘郡 |
소장처3 | 恩山面 佳谷里 朴柄鎬 |
MF | 35-008155 |
자료유형 | 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
해제정보
해제작성자 | 정수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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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작성일 | 2002-05-28 |
한글문서명 | 호적류11 |
한자문서명 | 戶籍類11 |
간행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해제작성언어 | 국한문 혼용 |
해제내용 |
호적류11
정수환
【정의】
1711년(肅宗37) 朴興新이 漢城府로부터 발급받은 準戶口
【내용】
[주제]
18세기 초반 肅宗 37년경 한성부에 거주하던 박흥신이 한성부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 이다. 본 문서는 전 식년인 辛酉年에 작성된 戶籍臺帳을 바탕으로 한성부에서 박흥신에게 발급해 준 것이다. 한성부에서는 준호구의 말미에 堂上과 郞廳 그리고 監董官이 각각 署押하였다. 본 준호구의 기록에 의하면 박흥신의 생부는 朴慶承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족보의 기록을 참고해보면 박흥신은 伯父 朴慶後를 繼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로서 준호구의 서두에 나타나는 박경후와 박경승의 관계 및 자세한 직역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박흥신의 처는 靑松沈氏였으며 외조는 南陽洪氏였다. 박흥신의 어머니 홍씨가 금년 67세로 함께 거주하고 있다. 처역시 함께 거주하고 있으며 문서의 마멸로 인해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으나 30대 가량으로 추측된다. 본 준호구의 ‘奴婢秩’에 기재된 상당수의 노비현황을 통해 당시 박흥신家의 재산규모를 짐작 할 수 있다.
[용어]
박흥신 妻父의 직역이 ‘及第’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文科(大科)에 及第한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에 반해 生員․進仕試에 대해서는 ‘入格’이라 지칭한다.
[인물]
[지명]
【특징】
본문서의 전반 하단부 및 전반 상단부가 결락되어 있다. 官印 6개가 불규칙적으로 찍혀 있다.
【비고】
노비에 대한 기록 중 그 부모의 이름을 알 수 없을 경우 ‘名不知’라 기록하였다.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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