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유묵(先代遺墨)
· 기본정보 해제 xml

일반사항
· 형식분류 | 고서-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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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분류 | 교육/문화-문학/저술-문 |
· 소장처 | 문중-거창 초계정씨 동계종택 |
· 작성시기 | 0000 |
· 비고 |
영인정보 : 『古文書集成 23 : 居昌 草溪鄭氏篇』(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5) 『古文書集成 80 : 居昌 草溪鄭氏篇(正書本)』(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5) |
· 소장정보 |
원소장처: 거창 초계정씨 동계종택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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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자 | 鄭岐壽 정기수 | 1622 - 1701 |
형태사항
· 크기(cm) | 31 X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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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필사본 |
· 장정 | 첩장 |
· 수량 | 32장 |
· 재질 | 종이 |
· 표기문자 | 한자 |
· 안내정보

내용
선대유묵
정기수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정온의 자필 문서를 차례로 모아 놓은 책이다.
집필자
1차 집필자 : 문현주, 2차 집필자 : 성봉현
· 상세정보

내용
정의
先代遺墨[내용 및 특징]
鄭岐壽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鄭蘊의 자필 문서를 차례로 모아 놓은 성책이다. 선대의 친필 문서를 오려서 붙여 놓았다.
표지 제목은 ‘先代遺墨’이라고 되어 있다. 첫 장에는 뒤에 실은 목록을 기재해 놓았는데 祖考文簡公府君筆蹟이라고 하여 그 세부 항목은 辛亥獨啓, 丙寅都承旨時疏, 丁卯江都箚, 臺閣避辭, 挹湖亭記, 鏡判時詩三首, 記夢詩, 直廳示諸公詩, 挽李蒼石詩, 吊李完平詩二首, 失題詩, 宿李子龍家□, 與姜生書, 與文高靈書, 祭李洗馬墓文의 15개이다. 실제로 수록해 놓은 내용은 위의 목차와 조금 차이가 있다. 문서를 각각 잘라 붙이고 해당 문서와 그와 관련한 간단한 사항을 첨지에 써서 붙여 놓았다.
丙寅都承旨時疏 앞에 붙은 첨지를 보면 어떠한 사안으로 작성된 글인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계운궁의 초상 때에 仁祖가 3년복을 입는 것으로 단행하자 군신 간에 많은 논쟁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노모의 곁에 있지 못한 것이 4개월이나 되었는데 아직 뵙지 못하여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현재의 직임을 띠고 가면 마음이 불안하고 직무를 대신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해직해 주심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언관으로 있으면서 직무를 태만히 하여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당시에 이처럼 사직을 청한 대개의 이유는 정온 뿐만이 아닌데 副提學崔鳴吉의 차자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신하들이 논집하였던 본의는, 전하로 하여금 남의 後嗣가 된 것으로 자처하게 하여 대원군의 신주에는 아버지로 칭하되, 綾原君으로 하여금 제사를 받들게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였다. 남의 후사가 되었으면 생부를 아비라고 칭할 수 없고, 아비라고 칭하였으면 남의 후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인데, 아비라고 칭하면서 아우로 하여금 그 아버지의 제사를 받들게 하는 것은, 예에 근거가 없다고 하였다. 이 상소만으로는 당시의 자세한 정황을 파악할 수 없지만 대체의 내용은 사직의 청원이라고 할 수 있다.
挽李蒼石詩는 挽李蒼石埈이라는 첨지만 붙여 놓고 원문서는 생략되어 있다. 吊完平은 처음의 항목 중 吊李完平詩二首를 말하는 것 같다. 이 문서들은 桐溪 先生문집에도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자료적 가치]
鄭蘊의 자필 문서를 통해 당시의 개인생활 또는 국정 참여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古文書集成 23:居昌草溪鄭氏篇 影印本』解題
정순우·안승준
韓國學中央硏究員, 1995
「거창지역의 향토사 관련자료와 그 역사적 성격」
박병련·김학수
『거창의 향토문화와 고문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거창문화원, 2001
집필자
1차 집필자 : 문현주, 2차 집필자 : 성봉현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