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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대왕목릉비(宣祖大王穆陵碑)

자료명 선조대왕목릉비(宣祖大王穆陵碑) 저자 이연(李昖), 미상, 미상, 미상,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240-1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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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경기도 구리시 (현재주소: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4-3)
· 작성시기 1747
· 비고 2-5240-1, 2-5240-2
1747년(건립)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피전자 이연(李昖) 1552 - 1608 조선 왕족
찬자 미상
서자 미상
전서자 미상
각자 미상

형태사항

· 유형 묘비(墓碑)
· 크기(cm) 전255.7/음기257.7 X 전96.2/음기97.0
· 판본 권자본(卷子本)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2면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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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선조(宣祖)와 의인왕후(懿仁王后), 인목왕후(仁穆王后)의 목릉표석(穆陵表石)의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선조대왕목릉비(宣祖大王穆陵碑)
[내용 및 특징]
조선 제 14대 국왕 선조(宣祖, 1552~1608)와 정비(正妃) 의인왕후(懿仁王后, 1555~1600), 계비(繼妃)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의 목릉(穆陵)에 세운 표석(表石)을 종이에 떠내어 족자로 장황한 금석문이다. 원 비석은 1747년(영조 23)에 세워졌으며, 비신의 높이는 178.5㎝, 폭은 73㎝, 두께는 29.5㎝이다. 장서각에 소장된 목릉비의 탁본은 전면(2-5240-1)과 음기(2-5240-2)가 각각 1점씩 소장되어 있다. 탁면에는 깔끔하게 오금(烏金)을 입혔고, 탁면 테두리에는 미색비단으로 사양(四鑲)을 둘렀다. 사양 위아래에는 남색비단으로 천리(天裏)와 지리(地裏)를 두었으며, 천리 가운데에는 세로로 두 줄의 풍대(風帶)를 붙였다. 아래에는 목축(木軸)을 부착해 마무리했다.
목릉은 본래 건원릉(健元陵) 서강(西岡)에 있었으나, 석물이 기울어지고 물이 새는 일이 많았다. 결국 1630년(인조 8) 2월 4일 원주목사(原州牧使) 심명세(沈命世)가 상소하여 인장을 건의하였고, 같은 해 11월 11일 건원릉 제이강(第二岡)으로 이장하였다. 목릉은 현재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동구능(사적 제 193호)에 있다. 목릉에 대해서는 장서각 소장 『목릉지(穆陵誌)』와 『목릉천장시등록(穆陵遷葬時謄錄)』, 『천장등록(遷葬謄錄)』 등을 참조할 수 있다.
탁본의 전면에는 소전체로(小篆體)로 ‘조선국 선조대왕목릉/의인왕후부중강/인목왕후부좌강(‘朝鮮國 宣祖大王穆陵/懿仁王后祔中岡/仁穆王后祔左岡)’이라 새겨져 있다. 왕릉 표석의 전면은 대개 왕후의 시호 아래에 ‘부좌(祔左)’ 또는 ‘부우(祔右)’로 끝맺고 ‘강(岡)’자를 쓰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목릉 표석의 전면은 왕후의 시호를 열서한 아래에 ‘강’자를 덧붙인 점이 특징인데, 이는 목릉은 왕후 2위(位)를 왕과 다른 산등성이에 안장하였기 때문이다.
『영조실록(英祖實錄)』에는 목릉 표석의 전면 문구를 정하는 과정이 보인다. 영조 22년 11월 19일에 장령(掌令) 김한운(金翰運)이 상소하여 혜릉(惠陵)에 표석을 세울 것을 청하였다. 영조는 이 일을 윤허하면서 목릉에도 표석을 세우라고 명하였다. 이후 영조가 목릉의 표석을 3줄로 열서(列書)하라고 하교하자, 같은 해 12월 23일 공조판서 조영국(趙榮國)이 두 왕비의 무덤이 선조와 다른 산등성이에 봉안되었으므로 ‘부(祔)’자를 쓰는 선례를 적용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 영의정 김재로(金在魯)가 반대의견을 내었다. 그는 ‘졸곡(卒哭)을 지낸 후에 부제(祔祭)를 거행하니, 부(祔)는 따라가게 한다는 뜻이므로 꼭 동실(同室) 합궤(合匱)를 하고 나서야만 부라고 일컫는 것은 아니다.’라며 옛 예법의 기록을 근그러 들고, 두 왕후의 능이 선조의 능과 같은 국(局)에 있어 하나의 능호로 통일되었으므로 부자만을 쓰는 것은 불분명하므로 ‘부중강(祔中岡)’ ‘부동강(祔東岡)’을 쓰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논의 끝에 김재로의 의견이 채택되었고, 다만 ‘부동강’은 ‘부좌강(祔左岡)’으로 고쳐 쓰게 하였다.
음기에는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약력이 해서로 기재되어 있다. 선조의 약력에서는 묘호(廟號)와 시호(諡號), 존호(尊號)로부터 탄생일, 즉위일, 승하일, 장사지낸 달과 장지, 이장일과 이장지, 재위년과 향년이 기록되었고, 마지막에 명나라에서 ‘소경(昭敬)’이라는 시호를 내렸음이 언급되었다. 두 왕비의 약력에서는 시호(諡號), 존호(尊號)와 탄생일, 왕비책봉일, 승하일, 장례일과 장지, 향년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음기 마지막 줄에는 ‘숭정기원후일백이십년 립(崇禎紀元後一百二十年 立)’이라고 건립연대가 기재되어 있다. 1864년(고종 1)에 인간된 『열성지장통기(列聖誌狀通紀)』권15에 ‘선조대왕목릉비’의 음기가 ‘목릉표석음기(穆陵表石陰記)’라는 제명으로 실려 있으나, 석비의 건립연대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전면은 이 글의 세주에 기재되어 있다.
피전자 선조의 초명은 균(鈞), 뒤에 연(昖)으로 개명하였다. 1552년(명종 7) 11월 11일 한성 인달방(仁達坊)에서 탄생하여 1608년(선조 41) 승하하였다. 중종의 손자이며,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초(岹)의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증영의정 정세호(鄭世虎)의 딸인 하동부대부인 정씨이다. 명종의 사랑을 받았으며, 명종이 후사(後嗣)가 없이 죽자 1567(명종 22)년 16세에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에도 학문에 정진하였다. 나이가 어려 처음에는 명종의 비 인순왕후 심씨(沈氏)가 수렴청정하다가 이듬해부터 친정을 하였다. 그가 왕위에 오름에 따라 아버지가 대원군으로 봉해짐으로써 조선에서 처음으로 대원군제도가 시행되었다. 재위 초기에 훈구파(勳舊派)와 사림파(士林派)의 갈등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림들을 신원(伸寃)하여 주었고, 반대로 선비들에게 해를 입힌 훈구세력들에게는 벌을 내려 사림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한편 인재 등용에 과거 성적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행이 뛰어난 사람을 중용하려고 애썼다. 따라서 이황(李滉) 이이(李珥) 등 많은 인재들이 등용되어 국정을 쇄신하였고, 유학의 장려에 필요한 『유선록(儒先錄)』, 『근사록(近思錄)』, 『심경(心經)』, 『삼강행실(三綱行實)』 등의 책들도 편찬하였다. 재위기간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민심을 안정시키고 적의 재침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백성들의 진휼에도 힘썼다. 전후 복구사업에도 힘을 기울였으나 실질적인 복구사업은 그의 뒤를 이은 광해군에 의해 추진되었다. 말년에 적자(嫡子)인 영창대군으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잇게 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경운궁(慶運宮)에서 승하하였다.
의인왕후의 본관은 나주(羅州)로 반성부원군(潘城府院君) 박응순(朴應順)의 딸이다. 1555년(명종 10) 탄생하여 1600년(선조 33)에 승하하였고, 소생은 없었다. 1569년(선조 2) 왕비에 책봉되어 가례를 행하였고, 1590년(선조 23) ‘장성(章聖)’의 존호를 받았다. 승하한 뒤 1604년(선조 37) ‘휘열(徽烈)’, 1610년(광해 2) ‘정헌(貞憲)’의 존호가 가상되었다.
인목왕후의 본관은 연안(延安 )으로,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딸이다. 1584년(선조 17) 탄생하여 1632년(인조 10)에 승하하였다. 1602년(선조 35)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606년(선조 39)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낳았다.
[자료적 가치]
선조와 정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간략한 이력과 함께, 18세기 중반 왕실 금석문의 제작과 탁본, 장황방식까지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목릉지(穆陵誌)』(장서각, 2-4425)
『목릉천장시등록(穆陵遷葬時謄錄)』(장서각, 2-2311)
『천장등록(遷葬謄錄)』(장서각, 2-2378)
『열성지장통기(列聖誌狀通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3.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Ⅱ-朝鮮王室 太祖~顯宗篇』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Ⅰ-卷子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한국금석문대계』권5(경기도편) 조동원 편저 원광대학교출판국, 1988.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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