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홈으로 > 자료분류 > 수집분류/왕실/고서

인조대왕장릉[천봉]비(仁祖大王長陵[遷奉]碑)

자료명 인조대왕장릉[천봉]비(仁祖大王長陵[遷奉]碑) 저자 이종(李倧), 미상, 이정제(李廷濟), 홍현보(洪鉉輔),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244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경기도 파주시 (현재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산25-1)
· 작성시기 1731
· 비고 2-5244
1731년(건립)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피전자 이종(李倧) 1595 - 1649 조선 왕족
찬자 미상
서자 이정제(李廷濟) 1670 - 1737 조선 문신
전서자 홍현보(洪鉉輔) 1680 - 1740 조선 문신
각자 미상

형태사항

· 유형 묘비(墓碑)
· 크기(cm) 245.5 X 142.4
· 판본 권자본(卷子本)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1면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인조(仁祖)의 장릉(長陵)을 이장(移葬)한 뒤 세운 표석(表石)의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인조대왕장릉[천봉]비(仁祖大王長陵[遷奉]碑)
[내용 및 특징]
조선 제 16대 국왕 인조(仁祖, 1595~1649)의 능인 장릉(長陵)을 이장(移葬)한 뒤 세운 표석(表石)을 탁본하여 족자로 장황한 금석문이다. 1731년(영조 7) 장릉을 이장할 때 표석을 세운 직후에 탁본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의 전면과 음기를 따로 탁본하여 하나의 족자로 장황하였다. 족자의 천리(天裏)와 지리(地裏)에 석류문양의 남색 비단을 대었으며, 사양(四鑲)에도 무늬가 있는 미색 비단을 대었다. 특히 석류문양은 섬세하게 직조되었으며 석류의 사실적 묘사가 반복적으로 도안되어 장식효과와 장황이 품위를 더해준다. 족자의 하단은 옥은 부착하지 않은 목축(木軸)을 달았다.
전면은 대자전서(大字篆書)로 3행에 걸쳐 ‘조선국/인조대왕장릉/인렬왕후부좌(朝鮮國/仁祖大王長陵/仁烈王后祔左)’라 새겼고, 음기는 6행에 맞추어 단아한 해서체로 새겼다. 음기의 내용은 인조의 탄생, 능양군(綾陽君)으로 봉해짐과 즉위 및 승하한 해의 간지와 날짜를 기록하였고, 비(妃)인 인렬왕후의 탄생 및 책봉, 초장과 이장에 관한 사실도 새겼다.
피전자 인조는 조선의 제16대 왕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름은 종(倧), 자는 화백(和伯), 호는 송창(松窓)이다. 선조의 손자로 정원군(定遠君 : 추존왕 元宗)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인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妃)는 영돈녕부사 한준겸(韓浚謙)의 딸인 인열왕후(仁烈王后)이다. 계비(繼妃)는 영돈녕부사 조창원(趙昌遠)의 딸인 장렬왕후(莊烈王后)이다.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綾陽都正)에 봉해졌고 이어 능양군에 진봉(進封)되었다.
1623년 김류(金瑬)·김자점(金自點)·이귀(李貴)·이괄(李适) 등 서인(西人)의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올랐다. 1624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자 일시 공주(公州)로 피난하였다가 도원수 장만(張晩)이 이를 격파한 뒤 환도하였다.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反金親明) 정책을 썼으므로, 1627년 후금의 침입을 받게 되자 형제의 의(義)를 맺었다.
정묘호란 이후에도 조정이 은연중 친명적(親明的) 태도를 취하게 되자, 1636년 국호(國號)를 청(淸)으로 고친 태종이 이를 이유로 10만 대군으로 침입하자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항전하다가 패하여 청군(淸軍)에 항복, 군신(君臣)의 의를 맺고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이 볼모로 잡혀가는 치욕을 당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의 내란·외침으로 국가의 기강과 경제상태가 악화되었는데도 집권당인 서인은 공서(功西)·청서(淸西)로 분열되어 싸웠고, 김자점이 척신으로 집권하여 횡포를 일삼았다. 이이(李珥)·이원익(李元翼)이 주장한 대동법을 실시했으며, 여진족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국경지대인 중강(中江)·회령(會寧)·경흥(慶興) 등지에 개시(開市)하여 그들과의 민간무역을 공인하였다.
1628년 벨테브레이(Weltevree:朴淵) 등의 표착(漂着)으로 서양 사정을 알게 되었고, 또 정두원(鄭斗源)과 소현세자를 통하여 서양의 문물에 접하게 되었다. 1634년 양전(量田:토지조사)을 실시하여 토지제도를 시정하였으며, 연등9분(年等九分)의 법을 정비하여 세제(稅制)를 합리화하였다. 1645년 볼모생활에서 들아온 소현세자가 죽자 조정은 세자 책봉 문제로 시끄러웠으며,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뒤 소현세자빈 강씨(姜氏)를 사사(賜死)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난국 속에서도 군제(軍制)를 정비하여 총융청(摠戎廳)·수어청(守禦廳) 등을 신설하였으며, 북변(北邊)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鎭)을 신설하였다. 한편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동사보편(東史補編)》 《서연비람(書筵備覽)》 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김육(金堉)·김집(金集)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능은 교하(交河)의 장릉(長陵)이다.
장릉의 이장에 대해서는 장릉이 조성된 지 30년이 훨씬 넘은 1686년(숙종 12)부터 제기되었다. 장릉의 천장에 대한 상소가 올라오자, 숙종은 여러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고, 대신들을 장릉에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다. 그러나 천장론과 천장불가의 입장이 서로 부분했다. 1687년(숙종 13) 8월부터 10일까지 숙종에게 올린 상소가 잦았으며, 천장을 둘러싼 대신들간의 논쟁이 특히 심했다. 그러나 숙종은 왕릉의 자로로서 풍수지리적인 조건이 부합하다는 대신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1729년(영조 7) 또 한 번의 천봉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번에는 능침(陵寢) 사이로 뱀이 출몰한다는 변고가 문제시되었다. 이를 살펴본 대신들도 그 정도가 심함을 아뢰자 영조는 천장을 계획하고 중론을 모을 것을 결심했다. 이때는 풍수의 조건을 따지는 것보다 이장 자체가 더 중요한 사안이 되었고, 숙종 때 논의되던 천장론과는 사정이 달랐다. 능의 손상이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조는 담당관청으로 하여금 계축년의 예에 따라 천장을 거행할 것을 명하고 홍치중(洪致中, 1667~1732)을 산릉총호사로 삼았다. 1731년(영조 7) 8월 30일 천장이 시행되었고, 영릉(英陵)의 규모를 기준으로 새로운 능을 조성하였다.
『영조실록』에는 표석의 글씨를 두 사람의 서사관이 썼다고 기록하였다. 전면은 표석전문서사관(表石篆文書寫官)으로 임명된 홍현보(洪鉉輔, 1680~1740)가 맡았고, 음기는 음기서사관(陰記書寫官)으로 발탁된 참판 이연제(李延濟, 1670~1737)가 썼다. 전서를 쓴 홍현보는 1718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을 거쳐 판서에까지 이르렀다. 전서에 능하여 많은 비문에 글씨를 남겼다. 이 글씨는 호조참판으로 있던 52세 때의 글씨이다. 음기를 쓴 이연제는 1700년 춘당대 문과에서 급제하였으며, 만년에는 지중추부사를 지냈다. 40년을 관직에 있으면서 청렴함과 강직함으로 왕을 보필하였고, 특히 영조의 신망이 두터웠다. 단정한 해서체를 잘 썼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
『인조장릉천봉도감도청의궤(仁祖長陵遷奉都監都廳儀軌)』(1731년, 규장각 14597)에는 표석에 글자를 새긴 뒤 이를 탁본하고 장황하여 사전(四殿, 즉 대전(大殿),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 중궁전(中宮殿), 세자궁(世子宮))에 진상하고 도감총호사, 당상, 도청, 본방낭청, 감조관, 제술관, 서사관, 차지중사 2명 등에게 각 한 건씩을 나누어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궁중에 진상한 것 외에도 여러 본의 탁본을 도감의 관원들이 받아 소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자료적 가치]
선의왕후의 이력을 금석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18세기 전반 왕실 금석문의 제작과 탁본, 장황방식까지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Ⅱ-朝鮮王室 太祖~顯宗篇』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Ⅰ-卷子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列聖誌狀通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3.
『조선금석총람』하 조선총독부 일한인쇄소인쇄, 1919.
『(仁祖)國葬都監都廳儀軌)』(규장각 13521)
『(仁祖長陵)山陵都監儀軌』(장서각 귀2-2367)
『仁祖大王遷陵謄錄』(규장각 15057)
『仁祖長陵遷奉都監都廳儀軌』(규장각 14597)
『長陵遷奉時分院日記』(규장각 12802)

집필자

성인근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