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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빈이씨묘비(靖嬪李氏墓碑)

자료명 정빈이씨묘비(靖嬪李氏墓碑) 저자 이씨(李氏), 미상, 이금(李昑), 미상,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278-1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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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경기도 파주시 (현재주소: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266)
· 작성시기 1725
· 비고 2-5278-1, 2-5278-2
1725년(건립)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피전자 이씨(李氏) 미상 - 미상 조선 후궁
찬자 미상
서자 이금(李昑) 1694 - 1776 조선 왕족
전서자 미상
각자 미상

형태사항

· 유형 신도비(神道碑)
· 크기(cm) 전190.5/음기191.3 X 전69.0/음기68.9
· 판본 권자본(卷子本)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2면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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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영조(英祖)의 후궁 정빈이씨(靖嬪李氏)의 묘비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정빈이씨묘비(靖嬪李氏墓碑)
[내용 및 특징]
조선 제 21대 국왕 영조(英祖, 1694~1776)의 후궁 정빈이씨(靖嬪李氏, 1694~1721)의 묘비문을 탁본하여 족자로 장황한 금석문이다. 전면은 ‘유명조선정빈/함성이씨지묘(有明朝鮮靖嬪/含城李氏之墓)’의 쌍행이고, 그 위에 ‘어필(御筆)’임을 기재하였다. 음기는 정빈이씨의 생애를 간략하게 기술하였다. 서체는 전면은 대자해서(大字楷書)이며, 음기는 해서로 쓰되 약간의 행서가 가미되어 있다. 찬자(撰者)는 미상이며 글씨는 전면과 음기 모두 영조의 어필이다. 전면과 음기는 따로 각각 따로 장황하였다. 탁본의 사양(四鑲)은 전면과 음기 모두 석류문이 있는 비단을 대었고, 풍대(風帶)가 부착되어 있다. 장서각에 음기만 표구된 동일한 탁본이 1본 더 소장되어 있다.
음기에는 정빈이씨의 생애가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고, 마지막에는 비석을 세운 연월이 적혀 있다. 이 비문에 따르면 정빈이씨는 본관이 함양(咸陽)으로, 1701년(숙종 27) 당시 세자였던 영조의 후궁으로 입궁하였고, 1721년(경종 1) 종5픔에 해당하는 소훈(昭訓)에 진봉되었으며, 영조 즉위년인 1724년에 정4품 소원(昭媛)에 다시 진봉되었다. 정빈은 평소 질병을 앓아 장동(壯洞) 사저(私邸)에 나와 생활했으며, 1721년 11월 16일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그 후로 1725년(영조 1)에 정빈(靖嬪)에 추증되었는데, 후궁으로 왕세자를 탄생했을 경우 빈에 봉하는 조례를 따른 것이다. 정빈의 향년이 28세였다는 기록이 있어 생년이 1694년(숙종 20)임을 알 수 있으며, 맨 끝에 비를 세운 연월이 적혀 있어 1725년(영조 1) 8월 7일 정빈묘를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정빈은 영조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는데, 1남은 영조의 맏아들로 후에 진종(眞宗)으로 추존된 효장세자(孝章世子, 1719~1728)이다. 2녀 중 장녀는 일찍 죽었고, 차녀는 화순옹주(和順翁主)에 봉해졌다.
『정조실록』2년 3월 18일 기사에 의하면 정빈의 궁호(宮號)를 연호(延祜)라 하고, 원호(園號 )를 수길(綏吉)이라 하고, 시호(諡號)를 온희(溫僖)로 올렸다는 기사가 있는데, 수길원은 바로 정빈의 묘소가 조성된 곳이다. 이 비문에는 수길원의 위치가 양주(楊洲) 고령동(高嶺洞) 옹장리(瓮場里)로 되어 있는데, 현재의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266에 소재하며, 사적 제 359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장서각에는 정빈묘비와 관련하여 『정빈함성이씨묘지(靖嬪含城李氏墓誌)』(2-3990)가 1첩 2절의 필사본으로 전한다. 1면에는 ‘유명조선정빈/함성이씨묘지(有明朝鮮靖嬪/含城李氏墓誌)’라고 씌여 정빈묘비 전면의 내용과 거의 같고, 2면은 정빈묘비 음기의 내용과 같으나 순서가 뒤바뀌었을 뿐이다. 다만, 정빈의 아버지가 통훈대부를 지낸 김후철(金後哲)이고, 어머니는 부사과를 지낸 김매일(金梅一)의 딸이었다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어 정빈의 가계를 보다 상세히 기재하였다.
정빈묘비의 글씨는 영조의 어필로 주목된다. 영조 어필은 대부분 촉체(蜀體)로 불리는 조맹부(趙孟頫)의 서풍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음기의 글씨에서도 이러한 면모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에 반해 전면의 글씨는 촉체에 근간을 두면서도 갈고리 부분과 전체적인 서풍에서 당(唐) 안진경(顔眞卿)의 중후한 획법을 구사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영조가 촉체 뿐만 아니라 당풍(唐風)의 해서에도 관심을 갖고 학서(學書)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료적 가치]
조선시대에 후궁에서 빈까지 오른 왕실여성의 삶의 궤적을 금석문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영조에 의한 추숭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정빈이씨 관련 금석문을 일괄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정빈이씨묘비》는 『정빈함성이씨묘지』와 더불어 정빈 이씨의 생애와 가계를 상고하는 데 도움이 되며, 영조 30대 초반의 어필 서풍을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경종실록(景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Ⅲ-朝鮮王室 肅宗~英祖篇』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5.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Ⅰ-卷子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京畿金石大觀』 경기도, 1982~1994.
『영조대왕 글․글씨』 궁중유물전시관, 2001.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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