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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의빈묘지문(端懿嬪墓誌文)

자료명 단의빈묘지문(端懿嬪墓誌文) 저자 심씨(沈氏), 송상기(宋相琦), 미상,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273-1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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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경기도 구리시 (현재주소: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
· 작성시기 1718
· 비고 2-5273-1, 2-5273-2
1718년(건립)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피전자 심씨(沈氏) 1686 - 1718 조선 왕후
찬자 송상기(宋相琦) 1657 - 1723 조선 문신
서자 미상
각자 미상

형태사항

· 유형 묘지문(墓誌文)
· 크기(cm) 상187.8/하187.6 X 상95.8/하95.6
· 판본 권자본(卷子本)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2면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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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경종(景宗)의 세자빈이었던 단의빈(端懿嬪) 심씨(沈氏)의 묘지문(墓誌文)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단의빈묘지문(端懿嬪墓誌文)
[내용 및 특징]
조선 제 20대 임금인 경종의 세자시절 세자빈이었던 단의빈 심씨(1686~1718)의 묘지문을 탁본하여 비단으로 장황한 금석문이다. 지문(誌文)은 사자(死者)의 전기를 적은 산문 형식의 글로서, 판석(板石)인 지석(誌石)에 새겨 능에 매립하였으며, 매립한 이후에는 탁본이 불가능하므로 일반적으로 그 직전에 인출(印出)하였다. 따라서 지문을 탁본한 시기는 대부분 능을 조성한 시점과 일치한다. 따라서 《단의빈묘지문》은 1718년(숙종 44)에 단의빈이 승하하자 지석을 제작하여 탁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문은 앞면과 뒷면을 각각 탁본하여 상(上)․하(下) 두 점으로 제작하였다. 족자의 천리(天裏)와 지리(地裏)는 옥색의 국화문 비단이고, 사양(四鑲)은 미색의 국화문 비단으로 장황하였다. 풍대(風帶)는 하본에만 남아있고, 모두 옥축(玉軸)을 달아 마무리하였다. 상본은 본래 풍대가 있었으나 떨어졌고, 배접한 오른편 위쪽이 많이 닳아 해졌으며, 사방의 배접한 부분이 떨어지는 등 보수가 필요하다. 이 자료는 단의빈이 사망한 1718년(숙종 44) 송상기(宋相琦)가 지은 지문을 지석에 새겨 탁본한 것이다.
단의빈 심씨는 경종의 세자빈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으로, 첨정(僉正)으로 우의정에 증직된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 심호(沈浩)의 딸이다. 1686년(숙종 12) 5월 21일 회현동에서 태어나 11세인 1696년(숙종 22)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5월 19일 왕자 윤(昀)과 가례를 올렸다. 1718년(숙종 44) 2월 7일 창덕궁 장춘헌에서 갑자기 병으로 사망하였다. 타고난 품성이 뛰어나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덕을 갖추어 어리지만 양전(兩殿)과 병약한 세자를 섬기는데 손색이 없었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단의왕후(端懿王后)에 추봉되었다. 시호는 단의(端懿), 전호(殿號)는 영휘(永徽)이며, 1726년(영조 2) 공효정목(恭孝定穆)의 휘호가 추상되었다. 능은 혜릉(惠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2-1 동구릉 내에 있다.
단의왕후의 장례는 1718년(숙종 44) 4월 18일에 행해졌다. 능제(陵制)는 인현왕후의 능인 명릉(明陵)의 제도를 따라 문무석(文武石)을 비롯한 각종 석물이 사람 몸 크기인 등신대(等身大) 정도로 왜소화되어 있으나, 문인석의 얼굴이 당대의 유행과는 다른 이색적인 안형(顔形)을 취한 것이 특징이다.
지문은 송상기(宋相琦, 1675~1723)가 찬술하였다. 송상기의 본관은 은진(恩津)으로, 자는 옥여(玉汝)이고, 호는 옥오재(玉吾齋)이다. 예조판서 송규렴(宋奎濂)의 아들로, 어머니는 김광찬(金光燦)의 딸이다. 송시열의 문인으로, 1684(숙종 10)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과 저작을 지내면서 학식과 문장이 뛰어나 홍문관에서 올리는 글을 대개 그이 손에서 나왔다고 한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가,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다시 벼슬에 나아갔다. 판돈녕부사로 병약한 경종을 대신하여 왕세자의 대리청정을 상소하였다가 강진으로 유배되어 이듬해인 1723년(경종 3) 유배지에서 병으로 죽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며, 문집으로 『옥오재집(玉吾齋集)』이 있다.
단의왕후와 관련된 자료는 장서각에 《단의왕후혜릉비(端懿王后惠陵碑)》가 있다. 단의왕후의 능표석(陵表石)을 탁본하여 족자로 장황한 것이다. 또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단의빈혼전도감의궤(端懿嬪魂殿都監儀軌)』(규13574, 규14849)가 소장되어 있는데, 단의왕후의 국장 때에 혼전에 관한 기록으로 참고가 된다.
[자료적 가치]
단의왕후의 생애를 금석문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18세기 전반 왕실 금석문의 제작과 탁본, 장황방식까지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경종실록(景宗實錄)』
『端懿嬪魂殿都監儀軌)』(규13574, 규14849)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Ⅲ-朝鮮王室 肅宗~英祖篇』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5.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Ⅰ-卷子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列聖誌狀通紀』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3.
『朝鮮王陵石物誌』 殷光俊 민속원, 1985.
『조선금석총람』하 조선총독부 일한인쇄소인쇄, 1919.

집필자

성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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