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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대왕장릉지문(仁祖大王長陵誌文)

자료명 인조대왕장릉지문(仁祖大王長陵誌文) 저자 이종(李倧), 조경(趙絅), 오준(吳竣),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245-1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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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경기도 파주시 (현재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산 25-1)
· 작성시기 1636
· 비고 2-5245-1, 2-5245-2
1636년(건립)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피전자 이종(李倧) 1595 - 1649 조선 왕족
찬자 조경(趙絅) 1586 - 1669 조선 문신
서자 오준(吳竣) 1587 - 1666 조선 문신
각자 미상

형태사항

· 유형 묘지문(墓誌文)
· 크기(cm) 상219.0/하195.5 X 상139.3/하141.2
· 판본 권자본(卷子本)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2면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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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인조(仁祖)의 능인 장릉(長陵)에 매립한 묘지석(墓誌石)의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인조대왕장릉지문(仁祖大王長陵誌文)
[내용 및 특징]
조선 인조(仁祖, 1595~1649)의 능인 장릉에 매립한 묘지석을 탁본하여 상․하 2본의 족자로 장황한 것이다. 지문(誌文)은 사자(死者)의 전기를 적은 산문 형식의 글로서, 판석(板石)인 지석(誌石)에 새겨 능에 매립하였으며, 매립한 이후에는 탁본이 불가능하므로 그 직전에 일반적으로 인출(印出)하였다. 따라서 지문을 탁본한 시기는 대부분 능을 조성한 시점과 일치한다. 따라서 인조대왕장릉지문은 1649년 9월의 장릉 조성 때에 지석을 매립하기 직전에 탁본한 것이다.
현재 장서각에는 장릉의 지석을 탁본한 上1점(2-5245-1)과 下2점(2-5245-3, 2-5245-2=2)이 소장되어 있다. 지문 상본은 자획이 선명하고 글자 사이에 입힌 먹색도 고르지만, 족자 좌측 상단의 천리(天裏)와 사양(四鑲) 부분에 훼손이 심하다. 지문 하본도 좀 구멍이 많은 상태이다. 지문의 내용은 상․하 모두 50행에 맞추어 해서체로 써서 새겼다. 탁본의 서두에는 ‘조선국인조헌문열무명숙순효대왕장릉지(朝鮮國仁祖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長陵誌)’를 다른 글자와 균등한 크기로 새겼다. 하본의 마지막에는 ‘기축구월이십일근지(己丑九月二十日謹誌)’라고 적어 1649년 9월에 지문을 지었음을 밝혔다.
피전자 인조는 조선의 제16대 왕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름은 종(倧), 자는 화백(和伯), 호는 송창(松窓)이다. 선조의 손자로 정원군(定遠君 : 추존왕 元宗)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인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妃)는 영돈녕부사 한준겸(韓浚謙)의 딸인 인열왕후(仁烈王后)이다. 계비(繼妃)는 영돈녕부사 조창원(趙昌遠)의 딸인 장렬왕후(莊烈王后)이다.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綾陽都正)에 봉해졌고 이어 능양군에 진봉(進封)되었다.
1623년 김류(金瑬)·김자점(金自點)·이귀(李貴)·이괄(李适) 등 서인(西人)의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올랐다. 1624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자 일시 공주(公州)로 피난하였다가 도원수 장만(張晩)이 이를 격파한 뒤 환도하였다.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反金親明) 정책을 썼으므로, 1627년 후금의 침입을 받게 되자 형제의 의(義)를 맺었다.
정묘호란 이후에도 조정이 은연중 친명적(親明的) 태도를 취하게 되자, 1636년 국호(國號)를 청(淸)으로 고친 태종이 이를 이유로 10만 대군으로 침입하자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항전하다가 패하여 청군(淸軍)에 항복, 군신(君臣)의 의를 맺고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이 볼모로 잡혀가는 치욕을 당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의 내란·외침으로 국가의 기강과 경제상태가 악화되었는데도 집권당인 서인은 공서(功西)·청서(淸西)로 분열되어 싸웠고, 김자점이 척신으로 집권하여 횡포를 일삼았다. 이이(李珥)·이원익(李元翼)이 주장한 대동법을 실시했으며, 여진족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국경지대인 중강(中江)·회령(會寧)·경흥(慶興) 등지에 개시(開市)하여 그들과의 민간무역을 공인하였다.
1628년 벨테브레이(Weltevree:朴淵) 등의 표착(漂着)으로 서양 사정을 알게 되었고, 또 정두원(鄭斗源)과 소현세자를 통하여 서양의 문물에 접하게 되었다. 1634년 양전(量田:토지조사)을 실시하여 토지제도를 시정하였으며, 연등9분(年等九分)의 법을 정비하여 세제(稅制)를 합리화하였다. 1645년 볼모생활에서 들아온 소현세자가 죽자 조정은 세자 책봉 문제로 시끄러웠으며,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뒤 소현세자빈 강씨(姜氏)를 사사(賜死)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난국 속에서도 군제(軍制)를 정비하여 총융청(摠戎廳)·수어청(守禦廳) 등을 신설하였으며, 북변(北邊)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鎭)을 신설하였다. 한편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동사보편(東史補編)』, 『서연비람(書筵備覽)』 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김육(金堉)·김집(金集)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능은 교하(交河)의 장릉(長陵)이다.
이러한 인조의 일대기는 장릉지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전기의 형식으로 서술된 지문의 앞부분은 간략한 가계와 태몽이야기, 남달리 영민하여 선조(宣祖)의 총애를 받던 유년시절, 관해군의 폐정, 반정의 과정, 이괄의 난, 그리고 금(金)과 청(淸)에 대항하면서 겪었던 고초들을 서술하였다. 그리고 인조가 왕으로서의 높은 자질과 은덕(恩德)을 지닌 왕이었음을 송축하는 내용을 적었다. 지문은 조경(趙絅, 1586~1669)이 지었고, 글씨는 오준(1587~1666)이 썼다.
지문을 지은 조경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선조에서 현종 시기까지 오랜 세월을 살아가면서 정치적으로 남인의 입장을 유지한 인물이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대내적으로 붕당정치가 치열하게 전개되던 때였고, 대외적으로는 명과 후금(후의 청나라)과의 사이에서 조선의 국제적인 긴장 관계가 지속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 조경은 84세까지 장수하면서 주요 직책을 역임하였다. 조경은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살면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원칙을 직언(直言)으로 나타낸 학자이자 정치가였다.
글씨를 쓴 오준은 1618년(광해군 10) 증광문과에 합격하여 관료로서 요직을 거쳤으며, 1660년(현종 1)에는 좌참찬이 되고, 이어 판중추부사에 올랐다. 글씨를 잘 써서 왕가의 길흉책문(吉凶冊文)과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비문을 비롯한 수만은 공사의 금석문을 썼다. 대표적인 글씨로는 아산의 《충무궁이순신비》, 구례의 《화엄사벽암대사비》 등이 전한다.
『효종실록』에 의하면 효종은 능역을 마친 뒤 도감 관원들에 대한 포상을 시행하면서 지문제술관 조경과 서사관 오준의 품계를 정헌대부로 올려주었다. 한편 인조 국장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 『(인조)국장도감도청의궤((仁祖)國葬都監都廳儀軌)』에 의하면 지석의 제작과 이를 탁본하여 족자로 장황하는 것은 국장도감의 삼방(三房)에서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지석은 2편으로 만들었는데, 충주석(忠州石)을 사용하였다. 규모는 예기척을 기준으로 길이 5척, 넓이 4척 5촌, 두께 6촌 9푼이었다. 여기에 글자를 새긴 후 모두 4건을 탁본하여 족자로 만들었으며, 대전(大殿), 대비전(大妃殿), 중전(中殿), 그리고 세자궁(世子宮)에 각각 진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봉모당봉장서목(奉謨堂奉藏書目)』의 「봉모당합내외봉장품목록(奉謨堂閤內外奉藏品目錄)」에도 ‘장릉지문상하족자’ 4점이 옛 봉모당에 소장된 것으로 적혀 있어 진상용으로 만든 4종의 탁본이 모두 봉모당에 소장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자료적 가치]
지문의 서술형식을 비롯한 서체, 석각기술, 인출, 장황, 봉안 등의 특징을 보여주는 17세기 대표적인 왕실금석문의 사례이다.

참고문헌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Ⅱ-朝鮮王室 太祖~顯宗篇』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Ⅰ-卷子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列聖誌狀通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3.
『조선금석총람』하 조선총독부 일한인쇄소인쇄, 1919.
『龍洲遺稿』「仁祖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長陵誌」 趙絅 /
『(仁祖)國葬都監都廳儀軌)』(규장각 13521)
『(仁祖長陵)山陵都監儀軌』(장서각 귀2-2367)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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