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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사원진국사비(寶鏡寺圓眞國師碑)

자료명 보경사원진국사비(寶鏡寺圓眞國師碑) 저자 승형(承逈), 이공로(李公老), 김효인(金孝印), 미상,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3-993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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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일 (현재주소: 경상북도 포항시 보경사)
· 작성시기 1224
· 비고 3993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승형(承逈)
이공로(李公老)
김효인(金孝印)
미상
미상

형태사항

· 유형 탑비(塔碑)
· 크기(cm) 172.7 X 103.0
· 판본 낱장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1면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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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고려의 고승 원진국사의 탑비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보경사원진국사비(寶鏡寺圓眞國師碑)
[내용 및 특징]
고려의 고승 원진국사 승형(圓眞國師 承逈 : 명종 1, 1171~고종 8, 1221)의 비석 탁본이다. 원비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 보경사에 있다. 비명은 통의대부 추밀원 우부승선성 국자감 대사성 사자금어대신 이공로가 짓고 글씨는 장사랑 대관서승 겸 보문각 교감 김효인이 써서 1224년(고종 11)에 세웠다. 김효인은 충렬왕 때의 명장 김방경(金方慶)의 아버지로 글씨에 뛰어났다. 이 비문은 구양순체(歐陽詢體)의 글씨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활달함을 잘 살렸다. 현재 원 위치에 있는 비는 귀부에 비신 양 모서리를 줄인 규형 비신의 형태이다. 당초문양(덩굴무늬)을 둘렀으며, 비상단귀점이 톡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보물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피전자 원진국사(1187년~1221년)는 능엄선(楞嚴禪)의 주창자이다. 성은 신씨(申氏). 자는 영형(永逈). 아버지는 통한(通漢)이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이다. 세살 때 고아가 되어 숙부인 시어사(侍御史) 광한(光漢) 밑에서 자라났다. 13세 때 문경 봉암사(鳳巖寺)에서 선사 동순(洞純)을 은사로 득도(得度)하였고, 이듬해 김제 금산사(金山寺) 계단(戒壇)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197년(명종 27) 스승 동순이 죽자 승과(僧科)를 포기하고 수도에 정진하였으나, 명종이 그의 뛰어난 도행을 듣고, 특별히 초선(初選)을 치르게 하였다. 그 뒤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의 지눌(知訥)에게서 법요(法要)를 받고 강릉 오대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예배한 뒤 크게 감응을 얻었다. 또, 청평산에서 이자현(李資玄)의 유적을 찾다가 ‘『수능엄경(首楞嚴經)』은 마음의 본바탕을 밝히는 지름길’이라는 『문수원기(文殊院記)』를 읽고 마음 깊이 감명을 받아 『능엄경』을 열람하였다. 이로써 모든 상(相)이 망상임을 통연히 깨닫고 자기 마음의 광대함을 알아 불법을 선양할 때에는 『능엄경』을 으뜸으로 삼겠다고 발원하였다. 『능엄경』이 한국 선종에서 숭상되게 된 연유는 이자현이 문을 열고 승형이 다시 천명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1210년(희종 6)에 연법사(演法寺) 법회의 법주(法主)가 되어 선풍(禪風)을 떨치고, 1213년(강종 2)에 삼중대사(三重大師), 1214년(고종 1)에 선사(禪師)가 되었고, 이듬해에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영일군 보경사(寶鏡寺)에 머물렀다. 1220년에는 희종의 넷째아들인 경지(鏡智)의 은사가 되었고, 1221년에 『능엄경』을 설한 뒤 팔공산 염불사(念佛寺)로 옮겨 입적하였다. 국사(國師)로 추증되었으며 비는 보경사에 있다. 시호는 원진(圓眞)이다.
원진국사비는 갓이 없고 신석양각을 귀접이한 독특한 형식으로 귀부와 대석은 단일석이고 비좌는 폭이 배면과 같은 정도의 넓이로 주위에 단변 44연변을 조각하였고, 귀갑은 6각형의 갑문내에 왕자를 질서있게 새겼으며, 귀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두화를 조각하였으며 신석 둘레에는 7.4센티미터의 당초문양을 장식하였다.
비문의 내용은 국사가 산양에서 태어나 운문사 연실선사(淵實禪師)에게 출가하여 승과에 급제하고 조계산에 가서 보조국사에 법요를 묻고 문성암에서 능엄경을 열람하고 유점사 주지를 지내고 서울에 가서 강종·희종·고종의 우대를 받고 보경사 주지를 지냈으며 기도와 덕행으로 감응을 많이 남기고 입적한 생애를 기술하였다.
[자료적 가치]
13세기 능엄선의 주창자 원진국사 승형의 생애와 종교활동을 금석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고려 중기 이후 능엄선의 이해에 도움을 준다.

참고문헌

「고려初期 寶鏡寺 塑造毘盧遮那三尊佛像의 一考察」 / 鄭恩雨 / 『문화재』26, 문화재관리국, 1993. 『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高麗篇4】 / 李智冠 / 伽山文庫, 1997. 『海東金石苑』上 / 劉燕庭 / 亞細亞文化社, 1976. 『韓國金石全文』中世上 / 許興植 / 亞細亞文化社, 1984. 『朝鮮金石總覽』上 / 朝鮮總督府 / 1919.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Ⅰ』 /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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