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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사갈(弘慶寺碣)

자료명 홍경사갈(弘慶寺碣) 저자 미상, 최충(崔冲), 백현례(白玄禮), 왕순(王詢),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GO018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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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충청남도 천원 (현재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경흥사지)
· 작성시기 1026
· 비고 GO018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미상
최충(崔冲)
백현례(白玄禮)
왕순(王詢)
미상

형태사항

· 유형 사적비(事蹟碑)
· 크기(cm) 193.9 X 100.0
· 판본 낱장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3편(片)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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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홍경사의 내력을 기록한 금석문의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홍경사갈(弘慶寺碣)
[내용 및 특징]
홍경사(弘慶寺) 창건을 기념하여 그 내력을 기록한 갈(碣)의 탁본이다. 갈(碣)은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것을 말하는데, 대개는 머릿돌이나 지붕돌을 따로 얹지 않고 비몸의 끝부분을 둥글게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비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어 석비의 형식과 다르지 않다. 거북모습의 받침돌은 양식상의 변화로 머리가 용의 머리로 바뀌었고, 물고기의 지느러미같은 날개를 머리 양쪽에 새겨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비몸돌 앞면 윗쪽에는 ‘봉선홍경사갈기’라는 비의 제목이 가로로 새겨져 있다. 머릿돌에는 구름에 휩싸인 용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1026년(현종 17)에 왕명으로 최충(崔冲 : 984~1068)이 찬술하였으며 백현례(白玄禮)가 글씨를 썼다. 봉선홍경사는 고려 현종 12년(1021)에 창건된 절이다. 절이름 앞의 ‘봉선(奉先)’은 불교의 교리를 전하고자 절을 짓기 시작한 고려 안종(安宗)이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목숨을 다하자, 아들인 현종(顯宗)이 절을 완성한 후 아버지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현재 절터에는 절의 창건에 관한 기록을 담은 비석만이 남아 있다.
홍경사는 현종(顯宗)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안종(安宗) 욱(郁)을 기념하여 지은 사찰로, 큰 절을 지어 나그네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했던 안종의 뜻을 달성하고자 한 것이다. 홍경사가 세워진 곳은 직산현(稷山縣) 성환역(成歡驛) 근처로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이었지만 여행자들의 숙소가 없고 강도들이 출몰하는 곳이었다. 이곳에 건립된 홍경사는 불교의 신앙과 함께 여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현종은 이러한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특별히 사찰 옆에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이라는 객관(客館)을 함께 짓도록 하였다. 사찰의 건립은 1016년(현종 7)에 시작되어 1021년(현종 12)에 완성되었다.
홍경사는 봉선홍경사(奉先弘慶寺)·홍경원(弘慶院)이라고도 한다. 1021년(현종 12)에 형긍(迥兢)이 왕의 명을 받아 여행자의 보호 및 편의를 위하여 창건하였으며, 수행을 위한 장소로 보다는 원(院)의 성격이 많았던 사찰이다. 이 절이 세워진 성환역 부근은 교통의 요충지였지만, 인가가 멀고 갈대가 우거진 늪이 있어 강도가 자주 출몰하여 행인이 불편을 겪던 지역이었으므로, 현종이 형긍에게 명하여 절을 세우게 한 것이다. 창건 당시 득총(得聰)·장림(藏琳) 등이 형긍을 도왔으며, 현종은 강민첨(姜民瞻)·김맹(金猛) 등을 별감사로 삼아 함께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1016년부터 1021년까지 200여 칸의 건물을 세우고 봉선홍경사라고 사액(賜額)하였으며, 절 서쪽에 객관(客館) 80칸을 세워 광연통화원(廣緣通化院)이라 하고 숙소와 양식과 말 먹이 등을 마련하여 행인들에게 제공하였다.
1130년(인종 8) 8월 묘청(妙淸)의 말을 따라 이 절에서 아타파구신도량(阿吒波拘神道場)을 27일 동안 개최하였다. 이 도량은 아타파구위 대장군, 즉 광신귀신 대장(曠神鬼神大將)이 말한 다라니를 외워 재난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법회로서 강종 때에도 이 절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때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도량문(道場文)이 전해지고 있다. 1177년(명종 7) 3월에는 망이(亡伊) 등이 이 절을 불태우고 승려 10인을 죽였으며, 주지승이 핍박을 받는 등의 변이 있었다. 1383년(우왕 9)한수(韓脩)가 이 절에서 축원하였다. 조선 초기에 절은 폐허가 되고 원만이 남았으므로, 절 이름을 따라 홍경원이라 불렀다고 한다.
[자료적 가치]
봉선홍경사의 창건내력을 금석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고려에서 제작한 갈기(碣記)의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류암집(柳菴集)』, 『목은집(牧隱集)』, 『동문선(東文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天安 弘慶寺址에 關한 考察-文獻資料와 出土遺物 檢討를 中心으로-」 / 白種伍·金成讚·金仁漢 / 『金顯吉敎授停年紀念鄕土史學論叢』, 1997. 「弘慶寺 창건의 思想的 背景」 / 朴洪培 / 『慶州史學』3, 동국대학교 경주대학 국사학과, 1984. 『韓國金石全文』中世上 / 許興植 / 亞細亞文化社, 1984. 『大東金石書』 / 李俁 / 亞細亞文化社, 1976. 『朝鮮金石攷』 / 葛城末治 / 1935. 『朝鮮金石總覽』上 / 朝鮮總督府 / 1919.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Ⅰ』 /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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