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홈으로 > 자료분류 > 수집분류/왕실/고서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비(淨土寺弘法國師實相塔碑)

자료명 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비(淨土寺弘法國師實相塔碑) 저자 미상, 손몽주(孫夢周), 미상, 미상,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359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충청북도 중원 (현재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 작성시기 1017
· 비고 25359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미상
손몽주(孫夢周)
미상
미상
미상

형태사항

· 유형 탑비(塔碑)
· 크기(cm) 224.2 X 106.1
· 판본 낱장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1면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고려 전기의 선사 홍법국사(弘法國師)의 행적을 기린 비석의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비(淨土寺弘法國師實相塔碑)
[내용 및 특징]
홍법국사실상탑비의 탁본이다. 원비는 1963년 보물 제 356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정토사터에 남아있었으나 1915년 실상탑과 함께 경복궁으로 옮겨왔다. 비는 귀부 위로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얹은 모습이다. 귀부는 용머리로 바뀌었는데,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에 나타나는 양식의 특징이다. 용의 표현은 다른 탑비의 받침돌에 비하여 구체적이고 힘차다. 또한 머릿돌에서도 용틀임 조각을 하였는데 그 수법이 주목할 만하다. 비 앞면에는 대사의 행적이,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편마암인 비의 표면이 많이 깎여 판독하기 어렵다.
비신의 높이는 229㎝, 폭은 104㎝, 두께는 23㎝로 비의 제액은 ‘실상지탑(實相之塔)’의 4자 2행으로 배열한 자경 8㎝의 해서이다. 비신천계(碑身天界)에는 비액을 좌횡으로 자경 8㎝의 ‘개천산정토사고국사홍법대선지비(開天山淨土寺故國師弘法大禪之碑)’라 전서하였다. 비문면에는 종횡세선으로 방형행간을 새겼고, 비문은 자경 2.2㎝의 구양순체 해서이다. 비음에는 입실제자 및 재가제자 등 명목을 열거한 자경 3㎝의 행서 음기가 있으나 풍화마손되어 거의 판별하기 어려운 정도이다. 장서각 소장 탁본은 6면 탁본을 전탁으로 환원하였으며, 중간 이하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불가능하다.
비가 위치한 정토사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개천산에 있던 절로,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절은 고려를 세운 태조로부터 국사의 예우를 받았던 법경대사 현휘가 주지로 있다가, 그의 뒤를 이어 홍법대사가 제자들을 지도하였던 대사찰이다. 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없고, 기와조각만이 눈에 보일 뿐이다. 이 절터의 기와에는 ‘개천산정토사(開天山淨土寺)’라 적혀 있는 사례가 발견되었다. 정토사는 개천사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이곳에 한때 고려실록이 보관되어 있었다.
피전자 홍법대사는 신라 신덕왕대에 출생하였고 12세에 출가하여 930년 4월 북산의 대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입조사 시랑 현언을 따라 당나라로 들어가 각지를 유력하고 돌아와 선풍을 진작하였고 고려 성종은 대선사의 호를 내렸으며 목종은 국사의 호를 더하여 봉은사에 이주하게 하였다. 비문의 마멸로 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그는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였으며 그 몰년은 명백치 않다. 목종은 국서를 내리고 화물(貨物)을 주었다. 시호를 홍법이라 하고 탑명을 실상이라 하였다.
찬자 정몽주는 고려의 문신으로 1010년(현종 1) 국자사업(國子司業)으로 과거에서 시무책을 제외한 시(詩)·부(賦)만을 시행하도록 건의하였으며, 이 해에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서숭(徐崧) 등 11명을 뽑았다. 이듬해상서좌승(尙書左丞)이 되었고, 1014년 한림학사 승지(翰林學士承旨)가 된 뒤 1016년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올랐다. 문장에 능하여 홍법국사비를 비롯하여, 지리산 지곡사(智谷寺)의 승려 혜월(慧月)과 진관(眞觀)의 비문을 지었으며 당대의 명필로 손꼽혔다.
실상탑비와 관련하여 실상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상탑은 국보 제 10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255㎝이며 홍법국사가 입적한 1017년(현종 8)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지에 있었는데, 1915년 경복궁으로 옮겨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 8각 지대석 위에 복판연화문이 장식된 복련석이 얹혀 있고, 8각 중대석 각 면에는 운룡문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원구형을 이루고 있으며, 옥개석의 8각 귀퉁이에 있는 귀꽃이 특이하다.
[자료적 가치]
많은 부분이 마모되어 전체적인 비문의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홍법국사가 태어나 출가하여 중국에 건너가 여러 선지식을 예방하고 돌아와 보제사 등에서 교화를 폈으며 성종과 목종의 우대를 받고 입적하여 국사에 추증된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음기에는 제자들을 열거하였는데 승통 삼중대사에 이어 선선원(禪選員) 선리도원(禪吏道員)이라는 독특한 명목을 세웠고 이어 재가제자를 들고 있어 고려 전기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실상탑과 함께 고려 전기 석조물 제작의 미술사적 양식을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譯註 羅末麗初金石文』上下 / 한국역사연구회 / 혜안, 1996. 『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高麗篇2】 / 李智冠 / 伽山文庫, 1995. 『韓國金石文大系』6 / 趙東元 編 / 원광대학교 출판부, 1993. 『韓國金石全文』中世上 / 許興植 / 亞細亞文化社, 1984. 『海東金石苑』上 / 劉燕庭 / 亞細亞文化社, 1976. 『朝鮮金石攷』 / 葛城末治 / 1935. 『朝鮮金石總覽』上 / 朝鮮總督府 / 1919.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Ⅰ』 /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Ⅰ-卷子本』 /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2004.

집필자

성인근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