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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선원낭원대사오진탑비(地藏禪院朗圓大師悟眞塔碑)

자료명 지장선원낭원대사오진탑비(地藏禪院朗圓大師悟眞塔碑) 저자 개청(開淸), 최언위(崔彦撝), 구족달(仇足達), 미상, 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2-5358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서지 장서각자료센터 해제 장서각자료센터
원문텍스트 장서각자료센터 이미지

· 기본정보 해제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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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강원도 명주 (현재주소: 강원도 강릉시 보현사)
· 작성시기 940
· 비고 25358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개청(開淸)
최언위(崔彦撝)
구족달(仇足達)
미상
미상

형태사항

· 유형 탑비(塔碑)
· 크기(cm) 187.9 X 97.0
· 판본 낱장
· 탁본형태 습탁(濕拓)
· 수량 1면
· 표기문자 한자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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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통일신라의 고승 낭원대사(朗圓大師)의 행적을 기린 비석의 탁본.
원자료제목
· 표제지장선원낭원대사오진탑비(地藏禪院朗圓大師悟眞塔碑)
[내용 및 특징]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보현사에 소재한 고려 초의 탑비이다. 940년(태조 23)에 세워진 이 비의 원명은 ‘고려국명주보현산지장선원낭원대사오진탑비’이다. 장서각에 소장된 탁본은 전면뿐이고 음기는 실제 비에 현존하지만 제작되지 않았다. 원비 비신의 높이는 188㎝, 너비 98㎝, 두께 20㎝이다. 보물 192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올린 모습이다. 용의 머리를 갖춘 거북받침돌은 등에 6각의 벌집 모양이 채워져 있고, 중앙에는 구름무늬로 장식한 높은 비좌가 마련되어 있다. 이수는 밑면에 연꽃을 새기고 그 위로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의 용을 힘차게 조각했다. 꼭대기에는 석탑에서처럼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과 1단의 보륜(寶輪; 바퀴모양의 장식)을 갖추고, 화염에 싸인 보주(寶珠; 연꽃 봉오리모양의 장식)을 얹고 있어 특이한 모습이다. 낭원대사가 96세로 입적하자 왕은 낭원이라는 시오와 오진이라는 탑명을 내렸다. 비문에는 대사의 출생에서부터 경애왕이 대사의 덕을 기려 국사로 예우한 사실 및 입적하기까지 그의 행적이 실려 있다. 비는 대사가 입적한 10년 뒤에 세워졌는데,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최언위가 짓고 명서가인 구족달이 썼다. 글씨는 2㎝ 정도의 해서로 필세가 웅경하고 예리하여 금석기가 있다.
피전자 낭원대사는 속성이 김(金)이고, 경주 출생으로 유거(有車)의 아들이다. 8세에 공부를 시작하여 유학을 익히다가 화엄사의 정행에게 배우고, 강주(岡州) 엄천사에서 구족계를 받은 후, 금산(錦山)으로 가서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불경을 공부하고 선을 익혔다. 후에 사굴산문의 개조인 범일(梵日)의 명성을 듣고 오대산으로 찾아가 범일로부터 심인(心印)을 받았다. 나이 96세, 법랍 72세로 보현사에서 입적하였다.
찬자 최언위(崔彦撝; 868∼944)는 신라 말 고려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초명은 최신지(崔愼之)·최인연(崔仁渷)이다. 최치원(崔致遠)의 종제이며,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 최항(崔沆)의 할아버지이다. 신라 말 고려에 투항하여 문한관으로서 한 시대의 문명을 떨쳤다. 885년(헌강왕 11)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909년(효공왕 13)에 귀국해 집사성시랑 서서원학사(執事省侍郎瑞書院學士)에 제수되었다. 935년(태조 18)에 신라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자, 고려에 가서 태자사부(太子師傅)가 되었고 문한(文翰)을 위임받았으며, 벼슬이 대상 원봉대학사 한림원령 평장사(大相元鳳大學士翰林院令平章事)에 이르렀다. 본래 성품이 너그럽고 글을 잘해 태자사부로 있을 때 궁원(宮院)의 액호(額號)는 모두 최언위가 찬정(撰定)한 것이었으며 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최언위는 최치원·최승우(崔承祐)와 함께 일대삼최(一代三崔)라 불리었는데, 최치원은 끝까지 신라를 섬겼고 최승우는 후백제견훤의 책사가 된 반면에 최언위는 고려의 문한관이 된 것으로 보아 최언위의 문명이 짐작된다. 또한 서법(書法)도 남달리 아름다워 충청남도 보령성주사(聖住寺)의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와 같은 비문을 쓰기도 했으며,「낭원대사오진탑비명(朗圓大師悟眞塔碑銘)」·「법경대사자등지탑비명(法鏡大師慈燈之塔碑銘)」등을 찬하기도 하였다.
글씨를 쓴 구족달(仇足達; 생몰년 미상)은 고려 초의 서예가이다. 보현사낭원대사오진탑비(普賢寺郎圓大師悟眞塔碑),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정토사지에 있는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 보물 제17호), 전라남도 곡성군동리산(桐裏山)에 있는 대안사광자대사탑비(大安寺廣慈大師塔碑)의 글씨를 썼다. 이들 비 외에는 그의 행적이나 가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기록이나 작품이 없는 실정이다. 낭원대사오진탑비에는 ‘興文監卿仇足達書(흥문감경구족달서)’라고 쓰여 있고,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에는 ‘沙粲具足達書(사찬구족달서)’라고 쓰여 있어서 두 비를 제작했던 당시 구족달의 관직명을 알 수 있다. 후자에서는 그의 성이 ‘구(仇)’에서 ‘구(具)’로 바뀌긴 하였지만, 이 두 기록이 동일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통설이다. 비문의 서체는 해서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유행하여 고려시대에도 애호되었던 중국 당나라 초기의 대가 구양순체(歐陽詢體)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자획의 처리가 매우 예리하고 강경하여 강한 필력을 시사하고 있고 여유 있는 공간분할의 묘에서 그의 개성이 역력히 드러난다. 필세가 뛰어나고 장대하여 북조의 의(意)가 있다는 『서청(書鯖)』의 평, 강경하고 굳으며 예리하다는 『동국금석평(東國金石評)』의 평에 부합되는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탑비가 있는 보현사는 본래 신라의 지장선원이었다. 현재 보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의 보현보살이 직접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나한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때 천축국에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강릉의 동남쪽 남정진 해변에 당도하여 문수사(지금의 한송사)를 세웠다. 이때 보현보살은 ‘한 절에 두 보살이 함께 있을 필요가 없으니, 내가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을 절터로 삼아 떠나겠다.’고 하고 시위를 당기니 보현사 터에 화살이 떨어졌으므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의 자세한 역사는 전해지지 않지만, 신라 말기의 선승 낭원(朗圓)이 신덕왕 2년(913)에 지장선원을 열어 전국의 학승들을 제도하다가 입적하였다. 조선 후기 순조 때 중건한 대웅전과 요사채, 주지실, 종각 등과 1982년 중건한 나한전 등의 당우들이 있으며, 절 앞에는 보물 제 192호인 진오탑비와 석탑, 사자모양을 취한 석물, 절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보물 제191호인 낭원대사 오진탑과 20여 기의 부도가 있다.
[자료적 가치]
화엄종에서 출가하여 구산선문의 하나인 굴산사에서 범일의 제자가 되어 선사가 되고 지방 세력의 지원으로 새로 지장선원을 개창하고 한편으로는 경애왕으로부터 국사로 대우받은 신라 말 선승의 활동상을 잘 보여준다. 음기에는 원주승·전좌승·도유나·사승(史僧) 등 사직(寺職), 승려와 명주지방의 도령(都領)·집사낭중(執事郎中)·원외(員外)·색집사(色執事) 등의 지방 세력을 들고 있어 신라 말 고려 초 지방 세력 동향을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참고문헌

「高麗初 高僧의 大師 追封」 / 박윤진 / 『韓國史學報』14, 2003, 『韓國古代金石文綜合索引』 / 權悳永 / 학연문화사, 2002. 『譯註 羅末麗初金石文』上下 / 한국역사연구회 / 혜안, 1996. 『朝鮮禪敎史』 / 忽滑谷快天 / 景仁文化社, 1986. 『韓國金石全文』中世上 / 許興植 / 亞細亞文化社, 1984. 「羅末麗初 禪宗의 社會的 性格」 / 崔柄憲 / 『史學硏究』25, 1975. 『朝鮮金石攷』 / 葛城未治 / 大版屋號書店, 1935. 『朝鮮金石總覽』上 / 朝鮮總督府 / 1919. 『海東金石苑』 / 劉喜海 / 1831. 『新稿韓國書藝史』 / 김기승 / 정음사, 1975. 『槿域書畵徵』 / 오세창 / 계명구락부, 1928. 『藏書閣所藏拓本資料集Ⅰ』 /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Ⅰ-卷子本』 /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2004.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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