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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경(黃庭經)

자료명 황정경(黃庭經) 저자 윤수(尹燧), 김상헌(金尙憲), 왕희지(王羲之), 미상, 미상
자료명(이칭) 黃庭經 저자(이칭) 왕희지(王羲之) , 왕의지(진)서(王羲之(晋)書) , 王羲之(晋) 書
청구기호 K3-542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자료센터(SJ_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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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형식분류 고서-금석문
· 내용분류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지역 미상 (현재주소: 미상)
· 비고 3542

·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윤수(尹燧)
김상헌(金尙憲)
왕희지(王羲之)
미상
미상

형태사항

· 유형 도경(道經)
· 크기(cm) 33.3 X 19.9
· 판본 첩장본(帖裝本)
· 탁본형태 습탁(濕拓)
· 표기문자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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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도교 경전인 황정경의 절첩형 탁본첩.
원자료제목
· 표제황정경(黃庭經)
[내용 및 특징]
『황정경(黃庭經)』은 도교 경전으로 불노장수의 양생(養生)에 관한 것이다. 지은이는 노자(老子)라는 설, 위ㆍ진 사이의 도사라는 설, 진(晉) 위부인(魏夫人)이라는 설 등이 분분하다. "황정경"으로 통칭되는 도경에는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 『황정외경경(黃庭外景經)』, 『황정둔갑연신경(黃庭遁甲緣身經)』 등이 있는데, 필적으로서의 『황정경』은 동진 왕희지(307-365)가 소해(小楷)로 쓴 『황정외경경』을 가리키며 그 말미에 “영화십이년오월입오(사)일 산음현사(永和十二年五月卄五(四)日 山陰縣寫)”라는 356년의 기년이 있다. 이에 대하여 당 저수량은 「우군서목(右軍書目)」에서 왕희지의 다섯 가지 정서(正書) 가운데 두 번째로 들었고 서호(徐浩)는 「고적기(古跡記)」에서 첫 번째로 들었으며, 왕희지가 도교 신봉자였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필적이다. 오랜 세월동안 모각을 거듭하면서 본모습을 잃었다고 하며, 특히 청대에는 그 신빙성을 완전히 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대 서예에 미친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황정경』 각본에는 행수에 따라 여러 계통이 있는데 60행짜리가 주류이다. 가장 시대가 올라가는 예가 ‘월주석씨본(越州石氏本)’으로 앞쪽 23행의 일부만 남은 잔결본이다. 남송 고종(高宗) 때 월주의 석방철(石邦哲)이 편집한 《박고당첩존(博古堂帖存)》에 진대 소해로 왕희지의 "황정경유자(黃庭經遺字)"ㆍ"해자악의론(海字樂毅論)"ㆍ"동방삭화상찬(東方朔畵像贊)", 왕헌지의 "십삼행낙신부(十三行洛神賦)", 진인(晉人)의 "조아비(曹娥碑)"를 실었는데, "황정경유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 필적은 명(明) 문징명(文徵明) 부자가 찬집ㆍ모각한 《정운관법첩(停雲館法帖)》 진당소자(晉唐小字) 권1에도 실렸는데 뒤쪽에 원(元) 예찬(倪瓚, 1301-74)의 1371년 발문이 딸려있다. 다음은 ‘수흔본(水痕本)’으로 《원우비각속첩(元祐秘閣續帖)》ㆍ《묵지당선첩(墨池堂選帖)》등 여러 법첩에 실려 있다. 이밖에 원(元) 조맹부(趙孟頫)가 소장했던 송탑본(宋搨本), 《여청재법첩(餘淸齋法帖)》에 실린 것, 《속삼희당법첩(續三希堂法帖)》제5책에 실린 것 등이 있다.
장서각 소장 첩에는 두 가지의 "황정경" 각본이 8면에 뒤섞여 있다. 하나는 ‘수흔본’ 계통으로 제1-7ㆍ8-15ㆍ24-32ㆍ49-56ㆍ57-60행을 5면에 실었는데, 제10행에 세로로 길게 水痕이 새겨져 있다. 다른 하나는 ‘월주석씨본’ 계통으로 23행을 3면에 나누어 실었는데, 뒤쪽 1면에 예찬의 발문이 딸려 있어 《정운관법첩》에서 번각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첩 앞쪽에는 공동생(崆峒生)의 발문이 써 있다 내용은 “진 우장군 왕일소가 쓴 황정경의 이 필법은 조화(造化)에 합치되니 명가(名家)의 종성(宗聖)이다. 진서(眞書)를 바르게 쓰는 사람이 원본에 따라서 (글씨를) 세우면, 황정경 글자는 거의 만세토록 썩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져 진(晉)을 싫어하니 무슨 까닭인가?”이며, 말미에 [금문지가(今文之家)]란 인장이 찍혀있다. 예찬 발문 다음에는 군미(君美)가 이백(李白)의 유명한 오언율시 「왕우군(王右軍)」을 행초로 쓴 것이 있다. 이 시는 왕희지가 산음의 도士에게 도경을 써주고 도사의 거위와 바꾸었다는 환아고사(換鵝故事)를 찬미한 것인데, “소소사도경(掃素寫道經)”을 “소소사도경(掃素寫道輕)”이라 잘못 썼다. 그 테두리에는 “당ㆍ송 이래 이와 같은 본은 없었다”라라 쪽지에 쓴 관기(觀記)가 붙여져 있으며, 말미에 [소유비옥장서(小酉祕屋藏書)]라는 인장이 찍혀있다. 군미, 공동생, 소유는 모두 미상이다. 이밖에 제1ㆍ8면과 예찬 발문에 [동기창인(董其昌印)]이란 인장이 찍혀 있는데, 동기창(1555-1636)은 명대의 대표적 문인서화가이다. 또 제1면 테두리에 [피종정중구인(皮宗鼎重九印)]이란 인장이 찍혀 있는데 원장(原裝)에 찍었던 것을 개장할 때 오려 붙인 것이다. 피종정은 미상이다.
우리나라에 전하는 왕희지 "황정경" 각본 중에서 고본(古本)에 속한다. 모각시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동기창 인장이 맞을 경우 《정운관법첩》이 간행된 1537-44년 이후에서 동기창 이전에 해당될 것이다.
[자료적 가치]
현전하는 황정경 각본 중에 고본이며 선본에 해당한다. 군미, 공동생, 소유, 동기창의 기록과 인장이 찍혀 있어 더욱 귀한 탁본이다.

참고문헌

『叢帖目』 一 / 淸 容庚 編 / 香港:中華書局, 1980. 「黃庭經諸本鑑賞記」 / 中田勇次郞 / 『中國書論集』, 東京:二玄社, 1970.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Ⅱ-帖裝本』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5.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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