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현시첩(群賢詩牒)
자료명 | 군현시첩(群賢詩牒) | 저자 | 미상, 김육(金堉), 조석윤(趙錫胤), 김익희(金益熙), 이명한(李明漢), 홍명하(洪命夏), 유계(兪棨), 조종저(趙宗著), 이경석(李景奭), 정치화(鄭致和), 김수항(金壽恒), 이단하(李端夏), 홍주원(洪柱元), 남용익(南龍翼), 이훤(李藼), 조상우(趙相愚), 김창흡(金昌翕), 김진규(金鎭圭), 이건명(李健命), 오태주(吳泰周), 권상하(權尙夏), 윤순(尹淳), 이방언(李邦彦), 이세최(李世最), 김창국(金昌國), 김제겸(金濟謙), 윤덕준(尹德駿), 김보택(金普澤), 유명건(兪命健), 미상, 미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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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명(이칭) | 群賢詩牒 | 저자(이칭) | 金堉(朝鮮)等著; , 김육(조선)등저;e조상우(조선)등서(金堉(朝鮮)等著;e趙相愚(朝鮮)等書) , 김육(金堉)|조상우(趙相愚) | ||
청구기호 | K3-470 | MF번호 | |||
유형분류 | 고서/금석문 | 주제분류 |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
수집분류 | 왕실/고서 | 자료제공처 | 장서각자료센터(SJ_ROY) | ||
서지 |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 해제 | 장서각 장서각자료센터 | ||
원문텍스트 | 장서각자료센터 | 이미지 | 디지털아카이브 PDF |
· PDF서비스
· 기본정보 해제 xml
일반사항
· 형식분류 | 고서-금석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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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분류 | 교육/문화-예술-금석문 |
· 소장처유형 |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 작성지역 | 미상 (현재주소: 미상) |
· 비고 |
3470 |
· 소장정보 |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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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 ||||
김육(金堉) | ||||
조석윤(趙錫胤) | ||||
김익희(金益熙) | ||||
이명한(李明漢) | ||||
홍명하(洪命夏) | ||||
유계(兪棨) | ||||
조종저(趙宗著) | ||||
이경석(李景奭) | ||||
정치화(鄭致和) | ||||
김수항(金壽恒) | ||||
이단하(李端夏) | ||||
홍주원(洪柱元) | ||||
남용익(南龍翼) | ||||
이훤(李藼) | ||||
조상우(趙相愚) | ||||
김창흡(金昌翕) | ||||
김진규(金鎭圭) | ||||
이건명(李健命) | ||||
오태주(吳泰周) | ||||
권상하(權尙夏) | ||||
윤순(尹淳) | ||||
이방언(李邦彦) | ||||
이세최(李世最) | ||||
김창국(金昌國) | ||||
김제겸(金濟謙) | ||||
윤덕준(尹德駿) | ||||
김보택(金普澤) | ||||
유명건(兪命健) | ||||
미상 | ||||
미상 |
형태사항
· 유형 | 시비(詩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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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기(cm) | 41.1 X 31.9 |
· 판본 | 첩장본(帖裝本) |
· 탁본형태 | 습탁(濕拓) |
· 표기문자 | 한자 |
· 상세정보
내용
정의
유철(兪㯙)이 받은 시를 후손들이 새겨 탁본한 시첩. 원자료제목
· 표제군현시첩(群賢詩牒)
[내용 및 특징]
취옹(醉翁) 유철(兪㯙, 1606~1671, 선조39~현종12)에게 보낸 당시의 저명한 문신․학자들의 시를 그의 아들 유명건(兪命健)과 손자인 백락헌(自樂軒) 위최기(兪最基, 1689~1768), 지수재(知守齋) 유척기(兪拓基, 1691~1767)가 모아 서가들에게 글씨를 부탁한 뒤 이 14수의 시로 시비(詩碑)를 만들어 탁본, 절첩형(1책 13절)으로 만든 시첩이다.
유철의 아들인 유명건은 유철의 신도비를 세운 뒤 아들인 유최기․유척기에게 아버지 유철에게 보낸 시를 글씨로 남겨 두게 하였는데, 유명건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들이 시비를 세워 현재의 「군현시첩」이 전해지게 되었다. 이 시첩의 가장 마지막에 실려 있는 시는 도촌(道村) 이훤(李藼)이 짓고 유명건이 전서로 썼는데, 마지막 시의 “불초자유명건(不肖子兪命健)”이라는 낙관에서 그의 아버지인 유철과 관련된 시들을 모아 엮은 시첩임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몇몇 시의 내용을 통해 보면 이 14수의 시들은 유철과 동세대 혹은 그보다 조금 뒤의 문신․학자들이 그에 관해 읊은 시들을 둘째 아들인 유명건이 모아 엮은 시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시남(市南) 유계(兪棨)가 짓고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쓴 "연행증별시(燕行贈別詩)"는 유계의 유문을 엮은 『시남선생문집(市南先生文集)』에는 "문유방숙철부연참간증별(聞兪方叔㯙赴燕朁簡贈別)"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어 청나라 연경에 사절로 나아가게 된 유철에게 증별의 시를 보낸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낙정(樂靜) 조석윤(趙錫胤)의 『낙정집(樂靜集)』에는 "여이사회유방숙동입은대술회유작(與李士會兪方叔同入銀臺述懷有作)"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어 그가 유철과 함께 승정원에서 지낸 일을 생각하며 동갑 친구로서의 우정을 나눈 시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창주(滄洲) 김익희(金益熙)의 『창주유고(滄洲遺稿)』와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의 『호곡집(壺谷集)』에는 각각 "모우방유방숙철심천이조수이재소차천이운(冒雨訪兪方叔㯙沈天以曹守而齋所次天以韻)"․ "유참판철만(兪參判㯙挽)"의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어 이 시첩이 그와의 깊은 우정의 상징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군현시첩」에 실려 있는 필적들은 각기 다른 서가들에 의해 쓰여 졌으며, 전서․해서․행서와 초서의 필의가 섞여진 서체들로서 다양하다. "주천증별시(酒泉贈別詩)"는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이 짓고 동강(東岡) 조상우(趙相愚, 1640~1718)가 썼다. 서체는 행서로 필획이 강하고 굳센 필체이다. 행서로서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나 글자의 결구는 안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은대술회시(銀臺述懷詩)"는 낙정(樂靜) 조석윤(趙錫胤, 1606~1655)이 짓고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쓴 해서이다. 글자의 구성이 성글성글하여 초솔(草率)한 맛을 느끼게 한다. "모우래방시(冒雨來訪詩)"는 창주(滄洲) 김익희(金益熙, 1610~1656)가 짓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가 쓴 행서이다. 안정된 결구와 탄탄한 획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영영증별시(嶺營贈別詩)"는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 1595~1645)이 짓고 한포재(寒圃齋) 이건명(李健命, 1663~1722)이 쓴 행서작품이다. 다소 마른 듯한 수획(瘦劃)으로 이루어져 있어 꼿꼿한 필심(筆心)을 연상하게 하는 글씨라 하겠다. 두 번째 "영영증별시"는 기천(沂川) 홍명하(洪命夏, 1608~1668)가 짓고 취몽헌(醉夢軒) 오태주(吳泰周, 1668~1716)가 쓴 행서이다. 점획의 비수(肥瘦)․강약(强弱) 등의 대비가 심하지 않고 변화가 적어 단조로운 맛이 있기는 하나 두터운 획과 긴밀한 자간처리가 장중하고 후덕한 맛을 느끼게 한다.
"연행증별시"는 시남(市南) 유계(兪棨, 1607~1664)가 짓고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 1641~1721)가 쓴 행서이다. 부분적으로 초서의 필의를 섞어 쓴 작품으로, 강직하고 둔중한 맛을 주는 글씨이다. "강각래방시(江閣來訪詩)"는 남악(南萼) 조종저(趙宗著, 1631~1690)가 짓고 백하(白下) 윤순(尹淳, 1680~1741)이 쓴 해서이다. 둥글고 원만하며 넉넉한 느낌을 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필획 역시 두텁고 부드러운 느낌을 둔다. 그 다음에 실려 있는 시는 제목이 밝혀져 있지 않은데, 시를 지은 사람은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이고, 글씨를 쓴 사람은 이방언(李邦彦)이다. 전서체로 소전(小篆)에 속한다. 원만한 좌우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전절(轉折)부분이 둥글게 잘 처리되어 있다.
기주(棋洲) 정치화(鄭致和, 1609~1677)가 짓고 이세최(李世最, 1664~1726)가 쓴 다음의 시는 전서체로 특히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글씨와 흡사한 필체이다. 그 다음에 수록되어 있는 시는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이 짓고 의주목사(義禁府使) 김창국(金昌國, 1644~1717)이 썼다. 서체는 소전이다. 자간의 처리가 엄격하게 처리되었으며 필획의 질감은 중심의 강한 철심(鐵心) 주위에 부드러운 것이 감싸고 있는 듯 둥근 원필과 중봉에 의한 질감을 느끼게 한다.
다음의 시는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1625~1689)가 쓰고 죽취(竹醉) 김제겸(金濟謙, 1625~1689)이 쓴 소전이다. 긴 장방형의 자형을 취하고 있으며 엄숙(嚴肅)하고 세련(洗練)되며 정치(精緻)한 맛을 느끼게 한다. 다음은 무하당(無何堂) 홍주원(洪柱元, 1606~1672)이 짓고 일암(逸庵) 윤덕준(尹德駿, 1658~1717)이 쓴 소전이다. 다소 치졸하고 초솔하며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필치이다. 그 다음의 글씨는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1628~1692)이 짓고 척재(惕齋) 김보택(金普澤, 1672~1717)이 쓴 소전이다.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시는 도촌(道村) 이훤(李藼, 1628~1679)이 짓고 나주목사 유명건이 쓴 전서체로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운필로 쓴 글씨이다.
[자료적 가치]
17세기 유철을 위시한 기계유씨 집안의 인적 교유양상을 확인할 수 있고, 당파를 떠나 당대 명필로 이름난 인사들의 서체를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市南全集』 / / 여강출판사, 1986.
『滄洲遺稿』 / / 『한국문집총간』 119, 민족문화추진회, 1990.
『樂靜集』/ / 『한국문집총간』 105, 민족문화추진회, 1990.
『白洲集』/ / 『한국문집총간』 97, 민족문화추진회, 1993.
『南萼先生文集』 / / 『한국역대문집총서』 1187, 경인문화사, 1994.
『壺谷先生文集』 / / 『한국역대문집총서』 2539~41, 경인문화사, 1998.
『藏書閣所藏拓本資料解題Ⅱ-帖裝本』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5.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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