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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대왕실록(英宗大王實錄)

자료명 영종대왕실록(英宗大王實錄) 저자 경성제국대학법문학부(京城帝國大學法文學部) 편(編)
자료명(이칭) 英宗大王實錄 , 영종대왕실록(英宗大王實錄) 저자(이칭) 實錄廳(朝鮮) 編 , 실록청(實錄廳)
청구기호 K2-81 MF번호 MF16-28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編年類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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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32
· 청구기호 K2-81
· 마이크로필름 MF16-28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경성제국대학법문학부(京城帝國大學法文學部)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9.1 X 20.4
· 판본 석인본(石印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68권(卷)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1×12.8cm
· 인장 藏書閣圖書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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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748년(영조 24) 7월부터 12월까지에 해당하는 『英祖實錄』 68권을 태백산사고본을 저본으로 영인한 것이다.
서지사항
京城帝國大學 法文學部에서 太白山史庫本을 저본으로 삼아 1932년(昭和 7)에 간행한 石印本으로, 68卷 1冊이 남아 있는 零本이다. 별도의 卷首題는 없으며,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표지 및 내지의 紙質은 洋紙이다. 권말 판권지 기록을 통해 1932년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1면 우측 상단에 ‘藏書閣圖書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태백산사고본 『英祖實錄』의 영인본이므로 실록청에서 편찬한 『영조실록』과 내용이 같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서 태백산사고본을 저본으로 삼아 1893권 888책을 사진판으로 영인했는데, 당시 약 30부만 출판하여 대부분은 일본으로 가져가고 국내에는 7, 8부만 남았다고 한다.
본서는 1748년(영조 24) 7월부터 12월까지의 기사를 싣고 있다. 다른 실록과 마찬가지로 날짜와 국왕의 거둥, 각 관청의 문서, 사관의 사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7월 기사에 翁主의 상례, 함경도전라도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에 대한 恤典, 奉朝賀 金有慶의 졸기 등이 보인다. 윤7월 양사에서 李光佐, 趙泰億 등의 관작을 追奪하자는 계사도 보인다. 대략 12월까지도 관직 임명 사례나 사헌부사간원의 계, 농사의 풍흉 상황, 祈雨祭 등 각종 國忌, 청나라와의 외교 문서, 형조전옥서의 看審 등 다른 실록과 마찬가지 범례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조선왕조실록』이 일제강점기에 간행되어 일반에게 공개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사학사적 가치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보급과 활용의 측면을 보여주는 기초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집필자

오항녕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