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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제강(麗史提綱)

자료명 여사제강(麗史提綱) 저자 유계(兪棨)
자료명(이칭) 麗史提綱 저자(이칭) [兪棨](朝鮮) 撰
청구기호 K2-78 MF번호 MF35-1284~1285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編年類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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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667](현종 8년)
· 청구기호 K2-78
· 마이크로필름 MF35-1284~128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유계(兪棨)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2.3 X 21.7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3권(卷) 23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1×16.8cm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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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兪棨(1607~1664)가 918년(天授 1)부터 1365년(辛昌 1)까지의 고려왕조사를 편년 강목 형식으로 엮은 역사서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版心題, 書根題는 모두 ‘麗史提綱’이다. 본문에 朱色 또는 黑色의 口訣이 달려 있다. 판형과 지질 등을 고려해 볼 때 1667년(현종 8)에 간행된 목판을 이용한 후쇄본이며, 장서각 소장 K2-79와 동일본이다.
체제 및 내용
책머리에는 서문·범례·목록·찬집제서 등이 수록되어 있고, 이어 본문으로 권1 太祖紀에서 권23 辛昌紀까지 실려 있다. 각 권은 수록된 분량에 따라 나누었으므로 같은 왕의 기사라도 권이 분리되어 수록되었다. 각 권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권1 태조 1, 권2 태조 2·혜종·정종·광종·경종, 권3 성종·목종, 권4 현종, 권5 덕종·정종·문종 1, 권6 문종 2·순종·선종·헌종·숙종, 권7 예종·인종 1, 권8 인종 2, 권9 의종, 권10 명종, 권11 신종·희종·강종 고종 1, 권12 고종 2, 권13 고종 3·원종 1, 권14 원종 2, 권15 충렬왕 1, 권16 충렬왕 2, 권17 충선왕·충숙왕, 권18 충혜왕·충목왕 1, 권19 충목왕 2·충정왕·공민왕 1, 권20 공민왕 2, 권21 공민왕 3, 권22 신우 1, 권23 신우 2·신창으로 구성되어 있다.
兪棨鄭麟趾 등이 편찬한 기전체의 『고려사』를 간략하게 줄이면서, 형식은 朱子의 『資治通鑑綱目』을 모방하였다. 일부 다른 자료도 이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찬집제서조에서 『高麗史』·『東國通鑑』·『東國史略』·『東國兵鑑』·『東史纂要』·『益齋亂藁』·『櫟翁稗說』·『牧隱集』·『破閑集』 『補閑集』·『錦南集』·『慵齋叢話』·『靑坡劇談』·『筆苑雜記』·『輿地勝覽』 등 15종의 책을 밝히고 있다.
서술은 天授 원년(918)부터 시작하여 辛昌 원년(1388) 11월에서 끝나고 있다. 강목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였으나, 우리나라의 紀年 아래 중국의 연호를 달아 놓거나 당시 사용하였던 宗·폐하·태후·태자·절일이나 왕의 詔制 등의 명칭이나 관제를 당시 사용하던 명칭을 그대로 기재하고 있는 점은 고려의 특수성을 반영한 결과이다.
특성 및 가치
초판본 『여사제강』은 유계가 對淸 척화주전론을 주장하였다가 과의 화의가 성립되자 충청도 林川에 유배되었을 때, 유배지에서 편찬한 것으로 사거한 3년 뒤인 1667년(현종 8)에 간행되었다. 그런데 영조1749년(영조 25) 『여사제강』 공양왕기의 기록을 문제 삼아 개판하도록 하였고, 장서각 소장 K2-78은 개판본이다. 초판본과의 차이를 살펴보면 영조에 의해 지적되었던 송시열이 쓴 서문의 ‘夷狄禽獸’라는 표현이 ‘倫綱弗正’으로 바뀌었으며, 목록의 권23 부분에서 신창 다음의 공양왕이라고 표기한 부분이 삭제되었다. 그리고 「공양왕기」 도입 부분은 ‘여사제강 권23’으로 대체되었으며, 총 51면에 달하는 「공양왕기」 전체가 삭제되었다.
여사제강』은 『고려사』가 번다하고 紀傳 방식에 따라 작성되어 각 사건이 여러 곳에 分記되어 있어 요령을 잡을 수 없으므로 提要의 필요에 따라 강과 목, 分註의 기술을 통해 주관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강목 형식을 취하여 쓰여졌다. 따라서 서술 시에는 필법에 따라 필삭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었다. 본서는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되었던 강목형 사서 편찬의 단초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여사제강』에 수록된 사론에서 보이는 도덕주의적 역사 평가는 조선 후기 이후 명분론적 역사 인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참고문헌

兪棨, 『麗史提綱』, 亞細亞文化社, 1973.
김구진·이현숙 共譯, 『(국역) 여사제강』, 세종대왕기념사업회 編,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7.
여사제강 공양왕기의 산삭과 그 정치적 함의」, 박인호, 『한국사학사학보』 7, 한국사학사학회, 2003.KCI

집필자

박인호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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