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홈으로 > 자료분류 > 수집분류/왕실/고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자료명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저자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 정서(淨書)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承政院(朝鮮) 編 ;
청구기호 K2-69 MF번호 MF35-1347~1351
유형분류 고서/일기 주제분류 史部/編年類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68]
· 청구기호 K2-69
· 마이크로필름 MF35-1347~1351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 정서(淨書)

형태사항

· 크기(cm) 23.3 X 18.3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26책(冊)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1865년(高宗 2) 1월에서 12월, 1871년(고종 8) 1월, 1874년(고종 11) 1월에서 12월까지의 『승정원일기』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원고지에 정서한 필사본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承政院日記’이다. 본문은 版下口에 ‘國史編纂委員會’라고 인출된 朱色 원고지에 필사되어 있다. 각 책 제1장에는 ‘承政院日記 年月日 冊次 枚數’가 기재되어 있어 해당 내용의 출처와 사용된 원고량을 파악하는 데 용이하다. 제1장 우측에는 ‘國史編纂委員會寄贈本’이 朱筆로 작성되어 있다. 본문에는 구두가 찍혀 있고, 교정한 흔적도 간혹 보인다. 교정 방식은 해당 부분을 刀割한 후 여기에 동일한 원고지를 附添하고서 補寫했다. 각 책 끝에는 ‘謄寫者 吳大泳, 初校 李舜九’와 같이 등사자와 교정자의 성명을 표기했다. 뒤표지 면지에는 ‘西紀一九七三年七月/藏書閣再裝’의 개장 기록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승정원 注書가 매일 史官과 함께 국왕과 조정의 정치 활동을 草冊에 작성하여 정서하고, 上疏나 書啓와 같은 문자로 된 문서는 서리가 베꼈다. 이를 토대로 일기가 만들어졌고 한 달 또는 반달 치씩 묶어 표지에 연월일을 적은 후 승지에게 제출하여 승정원에 보관했다. 『승정원일기』는 분량이 많고 草書로 작성되었는데, 1960~1977년국사편찬위원회에서 초서를 해서로 옮기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본서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원고이다.
承政院日記』는 1865년(고종 2) 1월 29일부터 남아 있다. 행도승지 李裕膺, 좌승지 申泰運, 우승지 朴商壽, 좌부승지 丁載榮, 우부승지 申佐模, 동부승지 南履輪이 보이고, 假注書事變假注書는 없었다. 『승정원일기』의 통상 기록 방식에 따라 날씨, 각 관청의 草記, 사헌부사간원의 啓, 상소와 箚子, 呈辭, 下直, 謝恩, 승정원이나 홍문관 등의 문안 기사, 전교, 관상감의 災異, 朝報, 書目, 狀啓, 관직 임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승정원일기』의 탈초라는 기초 작업의 과정을 증언해 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학술사적 가치가 있다. 특히 『승정원일기』의 번역이 진행되면서 校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탈초본의 정확성에 대한 검증이 시급한 바, 『承政院日記』 같은 탈초 작업의 과정을 증명해 주는 자료는 향후 번역, 교감에 기초 자료가 된다.

집필자

오항녕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