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담파적록(荷潭破寂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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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정보 해제 xml

일반사항
· 자료명(한글) | 하담파적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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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명(한자) | 荷潭破寂錄 |
· 사부분류 | 사부 |
·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
· 청구기호 | K2-307 |
· 마이크로필름 | MF35-206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한글 | 한자 | 설명 | 생몰년 | 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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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양(金時讓) 저(著) | 김시양 | 金時讓 |
형태사항
· 크기(cm) | 29.1 X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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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전사본(轉寫本) |
· 장정 | 선장(線裝) |
· 수량 | 2권(卷) 1책(冊) |
· 인장 |
李王家圖書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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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정보

내용
서지사항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고, 권수제면 우측 하단에는 인장을 도할한 부분이 있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종이에 필사되어 있으며, 주색으로 교정하거나 종이를 도할하여 수정하였다. 또한 서미에도 ‘疊’으로 표기하여 중첩된 부분을 나타내거나 첨지를 부착하기도 하였다.체제 및 내용
본서는 2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序·跋文 및 목차가 없다. 1611년(광해 3) 겨울 기사에서 시작하여 1612년(광해 4) 金直哉
의 옥사로 끝나지만, 2년간의 기록이 아니라 광해군
과 인조
전반기의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김시양 의 同年인 全有亨 이 醫學에 밝았고 黍稷에 대해 鄭經世 와 홍문관에서 논의한 이야기, 東海에 조석 간만의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 李睟光 일화, 임진왜란 때 成泳 의 활약, 1621년(광해 13) 후금이 遼東을 함락하고 명나라 毛文龍이 龍川에 주둔한 일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선조 후반기 기록도 보이는데, 광해군 이 春宮에 있을 때 선조 가 그 昏庸한 것을 보고 후사로 삼기를 망설였고 이 틈에 유영경이 用事했다는 기사, 李廷馣 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 왜적이 沈惟敬을 통해 和親을 청한 일, 1591년(선조 24) 臺諫이 鄭澈 을 탄핵하고 李山海 가 그 논의를 주동했던 일과 여기서 南北 分黨이 이루어졌던 일을 특기하였다.
광해군 대에는 1612년(광해 4) 봉산군수 申慄 의 무고로 시작된 김직재 의 옥사와 晉陵君 추대설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고, 1617년(광해 9) 李爾瞻 이 주도한 廢母論의 전개가 수록되어 있다. 李适 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광해군 부터 1924년(인조 2) 난을 일으키는 상황까지 정리되어 있다.
집필자
오항녕
범례
-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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