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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흥선대원군 귀국을 요청하는 고종의 주문(奏文)

자료명 1882년 흥선대원군 귀국을 요청하는 고종의 주문(奏文) 저자
자료명(이칭) 1882년진주주문(1882年진주주문) , 1882년 진주주문(1882年 陳奏奏文) , 진주주문(陳奏奏文) 저자(이칭) 미상(未詳)
청구기호 RD00751 MF번호 MF35-4656
유형분류 고문서/외교문서류/배표단(拜表單) 주제분류 국왕·왕실/보고
수집분류 왕실/고문서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기록유산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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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유형분류 외교류(外交類)-배표단(拜表單)
· 주제분류 국왕·왕실-보고
· 서비스분류 왕실고문서
· 작성시기 1882년(高宗 19)(光緖八年十一月初六日)
· 청구기호 RD00751
· 마이크로필름 MF35-465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형태사항

· 크기(cm) 37.1 X 96.2
· 수량 1
· 인장 4.2×4.2cm, 啓字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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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82년 11월 생부 흥선대원군의 귀국을 요청하는 고종의 주문(奏文)이다.
서지사항
체제 및 내용
임오군란 때 흥성대원군이 청나라로 압송되자 고종이 청나라 황제에게 자신의 생부인 흥성대원군을 조속히 귀국시켜줄 것을 요청한 주문(奏文)이다. 예순셋의 고령으로 다섯 달 동안 고단한 생활을 겪고 있을 부친 흥선대원군에 대한 염려의 뜻을 매우 곡진하게 기술하였다. 본 문서는 실제 주문을 작성하기에 앞서 고종의 계하를 받은 최종본으로서 문서 끝부분에 ‘계(啓)’자 인장이 먹으로 찍혀 있고, ‘광서 8년 11월 초8일’이라고 계하 시기를 적었다. 실제 주문에 적힌 제작 일시는 1882년(광서 8) 11월 6일이다. 본 주문을 제진(製進)한 자는 예문제학(藝文提學) 이응진(李應辰)이다.
특성 및 가치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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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RD00751_001]
  陳奏奏文
  朝鮮國王姓  謹
 奏爲本生父未蒙
 許還衷情震迫冒悚申籲冀垂
矜諒事伏念本生父駕海入
 朝孤留羇館今已五易月而歲且暮矣以
 奏以咨瀝盡腔血而回還汔無定期晝夜憂念寸心如割竊祈迨此候不甚寒
  晷未極短庶幾蒙
恩復路骨肉相見室家相依回咷爲笑免爲窮人及奉禮部回咨惶懔抑塞
  有不忍讀本生父年今六十有三未嘗有羇旅之苦自髫齔以來亦未
  有離違之戚一朝萬里聲塵邈然以癃病之身處殊絶之地雖蒙
異數優支廩餼凄楚憂惕何以全存雖顧念艱大黽勉視事方寸旣亂豈
  能辦理伏惟
皇帝陛下孝著治本
慈推倫至無一人不得其養無一物不被其
澤而遭値非常涕淚爲日跼天蹐地號呼曷已見今急景駸駸觱發戒嚴
  緬想竟夜無眠誰復問其燠寒至昃未食誰復節其飢飽一念至此如酲
  如痗直欲奮飛不能矣前
旨不啻截嚴荐
 奏固涉煩瀆情急勢迫聲不暇擇伏乞
天地父母
俯垂矜憫
特許本生父大院君不日還國俾小邦父子君臣感戴
鴻恩永永靡極不勝瞻
天望
聖泣血祈祝之至緣係本生父未蒙
 許還衷情震迫冒悚申籲冀垂
矜諒事理爲此謹具奏
 右  謹   奏
聞   伏   候
聖       旨
 光緖八年十一月初六日朝鮮國王姓 

 光緖八年十一月初八日
 啓
[원문:RD00751_002]
                 藝文提學李應辰製 進
[원문:RD00751_003]
 陳奏                    未蒙許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