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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년 단의빈(端懿嬪) 시호(諡號) 망단자(望單子)

자료명 1718년 단의빈(端懿嬪) 시호(諡號) 망단자(望單子) 저자
자료명(이칭) 1718년 단의빈 시호망단자(1718年 端懿嬪 諡號望單子) , 1718년 단의빈(端懿嬪) 시호망단자(諡號望單子) , 1717년 단의빈시호(1717年 端懿嬪諡號) , 1718년단의빈시호망단자(1718年端懿嬪諡號望單子) 저자(이칭) 미상(未詳) , 국왕:숙종
청구기호 RD00535 MF번호 MF35-4655
유형분류 고문서/단망류/시호망(諡號望) 주제분류 국왕·왕실/보고
수집분류 왕실/고문서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고문서자료관 장서각기록유산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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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유형분류 단망류(單望類)-시호망(諡號望)
· 주제분류 국왕·왕실-보고
· 서비스분류 왕실고문서
· 작성시기 1718(肅宗 44)(康熙五十七年三月初八日)
· 청구기호 RD00535
· 마이크로필름 MF35-4655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형태사항

· 크기(cm) 59.7 X 90.9
· 수량 1
· 인장 4.2×4.2cm, 啓字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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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숙종의 왕세자 윤(후일의 경종)의 빈(嬪) 청송심씨(1686~1718)가 죽은 뒤 시호를 의정하기 위해 1718년(숙종 44) 2월 빈청에서 숙종의 낙점을 바라며 올린 시호 망단이다.
서지사항
체제 및 내용
숙종의 왕세자 윤(후일의 경종)의 빈(嬪) 청송심씨(1686~1718)가 죽은 뒤 시호를 의정하기 위해 1718년(숙종 44) 2월 빈청에서 숙종의 낙점을 바라며 올린 시호 망단이다. 이 망단은 시호로 ‘端惠·溫懿·順靖’의 세 가지를 써서 삼망을 갖추어 올린 것인데, 이에 대해 숙종은 두 번째의 망 ‘온의’에 낙점하였다. 낙점은 해당 글자 위에 붓으로 점을 찍는 통상의 방식이 아닌 작은 ‘啓’ 자 도장을 찍는 방식을 따랐다. 시호의 삼망 아래에는 각 글자의 자의를 네 글자의 한자로 풀이하여 현주(懸註)해 놓았다. 망단에 낙점을 받은 뒤 승정원에서는 그 말미에 ‘계(啓)’자 도장을 찍고 ‘강희 57년(1718) 2월 19 일 낙점’이라는 주기를 달았다. 그러나 『숙종실록』 44년(1718) 3월 8일의 기사에 의하면 시호 ‘온의(溫懿)’의 ‘온(溫)’ 자가 선휘(先諱)를 범한다 하여 ‘단의(端懿)’라고 고쳐 정하였다. 이 망단 모두(冒頭)의 ‘단의빈시호(端懿嬪諡號)’라는 작은 글자는 ‘온의’에서 ‘단의’로 그 시호가 바뀌어 확정된 뒤에 써놓은 것이다. 단의빈 심씨는 11세 때인 1696년 왕세자 윤과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는데, 왕세자 윤이 왕위에 오르기 2년 전쯤인 1718년 2월 7일에 33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1720년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단의왕후로 추봉되었다. 피봉에는 '단의왕후시호휘호단자합4장 제22봉, 경신년십일월초칠일봉심경봉'이라고 씌여있다. 피봉의 크기는 세로*가로(99.8*95.5cm)이다.
특성 및 가치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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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RD00535_001]
端懿嬪謚號
    世子嬪謚號
    端惠
     守禮執義曰端
     柔質慈民曰惠
   溫懿
     德性寬和曰溫
     溫柔賢善曰懿
    順靖
     慈和徧服曰順
     恭己鮮言曰靖
    
    康煕五十七年二月十九日
    落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