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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정민시(鄭民始), 윤행임(尹行任), 김조순(金祖淳) 채점문서

자료명 1790년 정민시(鄭民始), 윤행임(尹行任), 김조순(金祖淳) 채점문서 저자
자료명(이칭) 정조(正祖) 효유문(曉喻文) , 정조효유문(正祖曉喻文) , 효유문(정조)(曉喻文(正祖)) , 정조 효유문(正祖 曉喻文) 저자(이칭) 미상(未詳) , 국왕:정조
청구기호 RD00162 MF번호 MF35-4653
유형분류 고문서/조령류/효유(曉諭) 주제분류 국왕·왕실/교령/유서
수집분류 왕실/고문서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고문서자료관 장서각기록유산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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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유형분류 조령류(詔令類)-효유(曉諭)
· 주제분류 국왕·왕실-교령-유서
· 서비스분류 왕실고문서
· 작성시기 ()
· 청구기호 RD00162
· 마이크로필름 MF35-4653
· 기록시기 1790년(정조 14)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형태사항

· 크기(cm) 35.0 X 95.6
· 수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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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영상(領相)과 좌상(左相)을 차임하기 위한 국왕의 의견을 답안의 형식을 빌려 적은 글에 대해 정민시, 윤행임, 김조순이 채점한 답안문서이다.
서지사항
체제 및 내용
이 문서는 영상(領相)과 좌상(左相)을 차임하기 위한 국왕의 의견을 답안의 형식을 빌려 적은 글에 대해 정민시, 윤행임, 김조순이 채점한 답안문서이다. 1790년(정조 14) 정조가 수원부 득중정에서 수원읍내의 유생들에게 시험을 보게 하였는데 당시 삼하를 받은 사람은 유학 박주양, 이상진, 윤성렬, 윤배어느 이기술, 김성주였다. 이 역시 청구기호 01-19-0161과 같이 영상과 좌상을 차임하는 이유를 적은 글이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이와같은 시험이 자주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민시, 윤행임, 김조순은 시관으로 참석하여 '삼하(三下)'의 점수를 주었다. 정민시(미상-1800)는 종조 초에 홍문관부제학, 규장각 직제학등을 역임하였으며, 평안감사,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윤행임(1762-1801)은 벽파의 탄핵을 받아 성환에 유배되었으며, 이듬해 규장각 직각으로 복직되었다가 1792년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예조판서과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했다. 김조순(1765-1832)은 이조참의, 부제학을 거쳐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시파와 벽파의 싸움에 중립을 지키며 당쟁을 단호히 없앨 것을 주장했다. 이 외에도 1793년(정조 17) 정조가 중희당에 나아가 과거를 보았는데 이때 일제학 정민시, 원임직각 윤행임, 직각 김조순이 시관으로 참석하였으며 삼하를 받은 사람은 진사 권준(權晙)을 직부회시(直赴會試)하게 하였으며, 그 다음 삼하인 진사 신필상, 생원 김면진, 생원 이동연, 생원 최시택에게는 각기 2푼(分)을 지급하였다. 출처: 승정원일기 1672책, 정조 14년 2월 11일(임술), 승정원일기 1718책, 정조 17년 6월 18일(기묘).
특성 및 가치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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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RD00162_001]
 領相
輔相重任也而上相爲尤重焉難其人不備其位且久
矣習俗渝惰孰警動之法綱▼(虚+兮)壞孰整頓之民生
因瘁孰拯濟之予以卿注意於上相者有年昨
冬事偶然巧値卿雖捨予而去予則曰有所待華
城我 仙寢所奉也陞府之初思得元老而借重
不得不暫煩卿一出而時事日艱鼎席久曠
圖任舊人宜亟而不可緩乃今重卜任以上相如許
大器量拔乎類儀觀蔚然輿人之誦曩卿居
中書四五年設施注措卓有硡謨遠猷任非不
專而位猶居亞未能盡卿之所蘊今幸裒然爲
首巖廊有托卿可展未展之志予亦任專任之效文
潞公八十之年猶畀以軍國重事以卿康旺之精力
聰察之神識正色卛下尊朝廷而立經紀予日
望之予知卿卿知予前有敷心之諭卿何可例讓
予何必多誥卿須體予如渴之想卽速簉朝以副
予意
 左相
卿予舊臣也予取卿者氣節之自任也表襮之
無間也名義之是尙也自宮僚至輔相風霜百變
屢躓屢起而予之知卿積廿年如一日耳客臘之
三我有贈詩東郭對梅之語已有先致意者
身居鼎鼐調我五味不於卿而伊誰之責乎予
一人均劑酸醎保合太和做我平蕩恢廓之治
享我靖共和泰之福用玆一念夙宵憧憧卿不
待予言而知予心矣此時承佐之責寅協之功卿
之任也不擇夷險不恤㤪謗遇事奮發國耳忘
身卽卿之素所秉執以若朝象以若時艱卿可
甘守東岡之陂不作中流之楫乎一時並卜鼎
席大備上而助元輔下而協端揆整頓我國事
安靖我世道毋負予平日期待之意
          鄭民始
          尹行任
          金祖淳
三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