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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찰자료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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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찰자료선집 21 / 晉陽河氏 士山書堂 簡札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일 2016-12-30
정가 40,000

이 책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심방동 사산서당(士山書堂)에 소장되어 있는 간찰첩 21책 중 101건의 간찰을 선별하여 도판을 싣고 그 원문을 탈초·정서했다. 사산서당은 진양하씨(晉陽河氏) 담헌(澹軒) 하우선(河禹善, 1894~1975)의 강학처이다. 하우선은 덕천서원 유계(儒契)를 결성하고 덕천서원 동재(東齋)를 복원하였다. 새로운 남명 문인을 발굴하여 문인록인 『덕천사우연원록(德川師友淵源錄)』을 편찬하고 『남명집』을 다시 간행하였다. 그는 일생 남명과 덕천서원의 위상 회복을 위해 힘썼다. 사산서당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는 모두 1,800여 점에 이른다. 이는 이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인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1593~1666)와 그의 아우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 1603~1651) 때부터 전해져오는 것으로, 대부분 간찰(簡札)이며 그 외 통문(通文)과 시문 원고 및 만사(挽詞), 제문(祭文), 소지(所志), 혼서(婚書), 단자(單子) 등이 있다. 하홍도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경의지학(敬義之學)을 사숙(私淑)하여 학문을 크게 이루어 ‘남명 이후 제일인자’라 칭해진 인물이었다. 하홍도는 인조반정 이후 서인 집권세력에 의해 왜곡된 남명의 위상을 회복하고, 몰락한 남명학파를 수습하여 후세에 계승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덕천서원 원임·원장, 용암서원 원장 등을 지내며 남명학파의 가장 중추적인 지도자로서 역할을 했다. 인조(仁祖), 효종(孝宗), 현종(顯宗)으로부터 징소(徵召)를 받았지만,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한편 아우 하홍달도 하홍도와 함께 가사산(佳士山) 기슭에 모한재(慕寒齋)와 경승재(敬勝齋)를 짓고 강학하면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남명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에 추증되었다. 문집이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몇 편만 전한다. 이 가문의 간찰은 강우지역 유림과 남명과 덕천서원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자료이다. 인조반정 이후 남명학파의 재정비, 남명연원의 변화, 덕천서원 유림의 동향, 덕천서원의 변천, 강우지역 유림과 노론 집권층과의 갈등, 강우지역 유림사회의 문제와 여론, 선비들의 일상·교유관계·학문 방법·수양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22 도서이미지
도서제목
한국간찰자료선집 21 / 晉陽河氏 士山書堂 簡札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일 2016-12-30
정가 40,000

이 책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심방동 사산서당(士山書堂)에 소장되어 있는 간찰첩 21책 중 101건의 간찰을 선별하여 도판을 싣고 그 원문을 탈초·정서했다. 사산서당은 진양하씨(晉陽河氏) 담헌(澹軒) 하우선(河禹善, 1894~1975)의 강학처이다. 하우선은 덕천서원 유계(儒契)를 결성하고 덕천서원 동재(東齋)를 복원하였다. 새로운 남명 문인을 발굴하여 문인록인 『덕천사우연원록(德川師友淵源錄)』을 편찬하고 『남명집』을 다시 간행하였다. 그는 일생 남명과 덕천서원의 위상 회복을 위해 힘썼다. 사산서당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는 모두 1,800여 점에 이른다. 이는 이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인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1593~1666)와 그의 아우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 1603~1651) 때부터 전해져오는 것으로, 대부분 간찰(簡札)이며 그 외 통문(通文)과 시문 원고 및 만사(挽詞), 제문(祭文), 소지(所志), 혼서(婚書), 단자(單子) 등이 있다. 하홍도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경의지학(敬義之學)을 사숙(私淑)하여 학문을 크게 이루어 ‘남명 이후 제일인자’라 칭해진 인물이었다. 하홍도는 인조반정 이후 서인 집권세력에 의해 왜곡된 남명의 위상을 회복하고, 몰락한 남명학파를 수습하여 후세에 계승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덕천서원 원임·원장, 용암서원 원장 등을 지내며 남명학파의 가장 중추적인 지도자로서 역할을 했다. 인조(仁祖), 효종(孝宗), 현종(顯宗)으로부터 징소(徵召)를 받았지만,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한편 아우 하홍달도 하홍도와 함께 가사산(佳士山) 기슭에 모한재(慕寒齋)와 경승재(敬勝齋)를 짓고 강학하면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남명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에 추증되었다. 문집이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몇 편만 전한다. 이 가문의 간찰은 강우지역 유림과 남명과 덕천서원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자료이다. 인조반정 이후 남명학파의 재정비, 남명연원의 변화, 덕천서원 유림의 동향, 덕천서원의 변천, 강우지역 유림과 노론 집권층과의 갈등, 강우지역 유림사회의 문제와 여론, 선비들의 일상·교유관계·학문 방법·수양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21 도서이미지
도서제목
한국간찰자료선집 21 / 晉陽河氏 士山書堂 簡札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일 2016-12-30
정가 40,000

이 책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심방동 사산서당(士山書堂)에 소장되어 있는 간찰첩 21책 중 101건의 간찰을 선별하여 도판을 싣고 그 원문을 탈초·정서했다. 사산서당은 진양하씨(晉陽河氏) 담헌(澹軒) 하우선(河禹善, 1894~1975)의 강학처이다. 하우선은 덕천서원 유계(儒契)를 결성하고 덕천서원 동재(東齋)를 복원하였다. 새로운 남명 문인을 발굴하여 문인록인 『덕천사우연원록(德川師友淵源錄)』을 편찬하고 『남명집』을 다시 간행하였다. 그는 일생 남명과 덕천서원의 위상 회복을 위해 힘썼다. 사산서당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는 모두 1,800여 점에 이른다. 이는 이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인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1593~1666)와 그의 아우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 1603~1651) 때부터 전해져오는 것으로, 대부분 간찰(簡札)이며 그 외 통문(通文)과 시문 원고 및 만사(挽詞), 제문(祭文), 소지(所志), 혼서(婚書), 단자(單子) 등이 있다. 하홍도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경의지학(敬義之學)을 사숙(私淑)하여 학문을 크게 이루어 ‘남명 이후 제일인자’라 칭해진 인물이었다. 하홍도는 인조반정 이후 서인 집권세력에 의해 왜곡된 남명의 위상을 회복하고, 몰락한 남명학파를 수습하여 후세에 계승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덕천서원 원임·원장, 용암서원 원장 등을 지내며 남명학파의 가장 중추적인 지도자로서 역할을 했다. 인조(仁祖), 효종(孝宗), 현종(顯宗)으로부터 징소(徵召)를 받았지만,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한편 아우 하홍달도 하홍도와 함께 가사산(佳士山) 기슭에 모한재(慕寒齋)와 경승재(敬勝齋)를 짓고 강학하면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남명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에 추증되었다. 문집이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몇 편만 전한다. 이 가문의 간찰은 강우지역 유림과 남명과 덕천서원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자료이다. 인조반정 이후 남명학파의 재정비, 남명연원의 변화, 덕천서원 유림의 동향, 덕천서원의 변천, 강우지역 유림과 노론 집권층과의 갈등, 강우지역 유림사회의 문제와 여론, 선비들의 일상·교유관계·학문 방법·수양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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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목
한국간찰자료선집 20 / 金性溵의 京城搢紳札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일 2014-10-20
정가 40,000

인일(引逸) 김성은(金性溵, 1765~1830)은 전라북도 정읍의 학자로, 전북 고창과 정읍 일대에 세거하는 광산김씨 가문 출신이다. 김성은은 황윤석(黃胤錫), 김정묵(金正默), 이직보(李直輔)에게 수학하였고 노론 낙론(洛論)의 학통을 숭상하였다. 『동국문헌록』, 『인일정유고』를 썼고, 『양호거의록』, 『고암서원지』, 『제왕역대연표록』, 『노계집』, 『광산김씨족보』 등을 간행하였다. 『경성진신찰』은 김성은이 1790년부터 1829년까지 39년간 66명에게 받은 편지 118편을 천(天), 지(地), 인(人) 3책으로 엮은 책이다. 서명이 ‘경성진신찰’인 까닭은 편지의 발신자 대부분이 조정의 관원이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 편지들을 통해 우리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전북 지역의 향촌 사족의 인적 관계망을 살펴볼 수 있다. 김성은은 당시 경향의 유력 인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선조의 추증과 정려를 도모하고 여러 관련 서적을 편찬하는 한편, 서원의 운영에도 관여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선양을 추진하였다. 『경성진신찰』은 이러한 김성은의 활동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19 도서이미지
도서제목
한국간찰자료선집 19 / 金昌協의 農巖眞蹟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일 2012-02-09
정가 32,000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18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31세에는 증광문과의 전시장원으로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이어서 병조좌랑, 사헌부지평, 부교리 등을 거쳐 교리, 이조좌랑, 이조정랑, 동부승지, 대사성,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으며 명에 의해 송시열(宋時烈)의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를 교정하였다. 그는 기사환국(1689) 때 아버지가 진도로 유배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 현재 경기도 포천시)에 은거하였으며, 갑술환국(1694)으로 정국이 바뀌어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호조참의, 예조참판, 홍문관제학, 대제학, 세자우부빈객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농암진적(農巖眞蹟)》은 김창협이 친필 시문이나 서찰 등을 모아 분류한 장첩이다. 대부분이 김창협의 족질(族姪)인 김시좌(金時佐, 1664~1727)에게 보낸 편지인데, 그의 후손에 의해 대대로 전해지다 김성근(金性根)에 의해 장첩되었다. 《농암진적》은 『농암집(聾巖集)』에 수록되지 않은 글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농암집』에 수록할 목적으로 편집한 흔적이 보여 『농암집』의 편찬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농암진적》중 수(水)·목(木)·금(金)·토(土)의 4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의 사상과 학문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탈초와 국역을 실어 연구자는 물론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구성되었다.

18 도서이미지
도서제목
한국간찰자료선집 18 / 邵南 尹東奎 書簡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일 2012-02-10
정가 42,000

소남(召南) 윤동규(尹東奎, 1695~1773)는 고려 명장 윤관(尹瓘)의 24세손으로, 9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 속에서 성장하다가 1711년 또는 1712년경 성호 이익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인천과 서울 용산에 살면서 성호가 별세할 때까지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스승과 동료들을 도와 『이자수어(李子粹語)』, 『이선생예설유편(李先生禮說類編)』, 『성호사설(星湖僿說)』 등 성호의 주요한 학술적 업적들을 함께 편찬하였고, 성호 사후에는 성호 문하의 최연장자로서 성호학파를 이끌었다. 소남은 평생 빈궁한 생활에 시달리면서도 학문에 매진하였는데, 현재 전하는 『소남선생문집』에 담긴 서간들을 비롯하여 경설에 관한 여러 도서기 형태의 글들과 다양한 예설을 통해 그 학문적 깊이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소남이 스승 성호 이익, 정산 이병휴, 순암 안정복과 주고받은 간찰과 그에 해당하는 정서를 엮은 것이다. 일상적인 안부뿐만 아니라 소남의 학술적 교류 상황과 사칠론(四七論, 사단칠정론), 예학(禮學), 경학(經學)에 관한 논의 등 주요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어 소남의 학문적 관심사와 견해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이자수어』 편찬과 관련해 성호, 순암에게 보낸 서간들에는 기본 항목의 분류, 발췌하는 내용, 책의 제목에 이르기까지 함께 상의한 내용들이 담겨 있어 그 편찬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준다.

17 도서이미지
도서제목
한국간찰자료선집 17 / 《詠畵》:吳道一의 燕行別章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일 2011-02-25
정가 43,000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詠畵》는 서파 오도일의 연행을 기념하여 지인들이 지어준 시문을 엮은 서첩이다. 오도일은 1686년과 1694년 두 차례에 걸쳐 연행하였는데, 수많은 이들이 그가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시문을 지어 송별하였다. 《詠畵》는 총 3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 영인도판과 함께 원문 및 번역을 싣고 있다.

16 도서이미지
도서제목
한국간찰자료선집 16 / 旅軒先生手札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일 2010-12-01
정가 30,000

조선 중기 유학자 여헌 장현광의 친필 간찰첩 <여헌선생수찰>을 번역한 한국학 기초자료집이다.

15 도서이미지
도서제목
한국간찰자료선집 15 / 議政府(楊洲) 潘南朴氏 西溪 朴世堂 後孫家篇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일 2010-12-02
정가 32,000

14 도서이미지
도서제목
한국간찰자료선집 14 / 尙州 延安李氏 息山 李萬敷宗宅篇Ⅱ
지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발행일 2008-12-26
정가 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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