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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황태자가 올린 세 번째 정청(庭請) 주본(奏本)과 고종황제의 비답

자료명 1901년 황태자가 올린 세 번째 정청(庭請) 주본(奏本)과 고종황제의 비답 저자
자료명(이칭) 황태자(척)백관정청(삼)(皇太子(坧)百官庭請(三)) , 황태자(척)백관정청삼(皇太子(坧)卛百官庭請三) 저자(이칭) 미상(未詳)
청구기호 RD00192 MF번호
유형분류 고문서/주의류/정청계품(庭請啓稟) 주제분류 국왕·왕실/교령/비답
수집분류 왕실/고문서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장서각기록유산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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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유형분류 주의류(奏議類)-정청계품(庭請啓稟)
· 주제분류 국왕·왕실-교령-비답
· 서비스분류 왕실고문서
· 작성시기 1901년 12월 25일(광무(光武) 5)(發給時期 未詳)
· 청구기호 RD0019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형태사항

· 크기(cm) 62.8 X 170.0
· 수량 1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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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901년 12월 25일 황태자가 고종황제에게 존호를 가상하자는 것과 연회를 베풀어 경축하자는 자신의 청을 허락해주기를 바라는 세 번째 정청 주본과 그에 대한 고종의 비답이다.
서지사항
체제 및 내용
이 문서명은 "皇太子 坧 率百官庭請三"으로 되어 있어 이 문서와 관련된 정청이 앞서 두번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문서의 배면에는 "庭請三次正本啓辭"라고 기록되어 3차 정청의 정본임을 알 수 있다. 대개 정청은 2~3차례 상소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감안하면 당시의 일과 관련이 있는 문서가 총 5~6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종실록』에서 확인해 보면, 상소는 12월 22일과 23일에 있었고, 정청과 재정청은 24일에 있었으며, 3차 정청은 12월 25일에 있었다. 내용은 고종의 공로와 덕에 맞는 칭호가 있어야 함에도 존호를 가상하자는 제의를 허락하지 않고 명성황후의 업적을 드러내기 어려우니 존호를 가상하는 것을 허락해 줄 것과 연회를 베풀어 경축하자는 황태자의 주청에 대해 고종황제가 존호를 가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연회를 베푸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비답이다. - 『고종실록』 41권, 고종 38년 12월 23일; 『고종실록』 41권, 고종 38년 12월 24일 ;『고종실록』 41권, 고종 38년 12월 25일
특성 및 가치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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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RD00192_001]
  皇太子率百官庭請三
奏曰伏以小子上援彜章下循輿情䟽懇而庭籲者再四而不休夫豈不知瀆撓之爲懼而苟爲
  是支煩哉誠以子至切之情由中而莫遏不得請則不可止也竊庶幾孚格
天心克回 淵衷而連伏讀 批旨下者秖有告布稱慶之
  勉循而已至於縟儀盛典則 謙光愈隆 兪音愈邈小子惘然而失圖千官徊徨而莫措實不
  能無憾於
  天地之大也洪惟我
父皇陛下至德鴻烈冠百王而邁三古深仁厚澤浹八埏而覃兆民堂堂大號肇創乎東韓亹亹令
  聞洋溢乎五洲者前後䟽
  奏旣已罄陳無容更事張皇而往日之草草範鏤不足以揄揚其萬一則小子今日加 上之請
  其可以已乎經曰大德必得其名漢史氏曰主上明聖而德不布聞有司之過夫以我
父皇陛下之德之功 尊號徽稱不能摸狀則將何以穪爲人子爲人之職也哉又竊伏念 天命申佑
  壽祿無疆
臨御光四紀 寶筭望六旬引伸觸長曆數將基於萬年手攢足蹈賀忱先切於亞歲小子今日
[원문:RD00192_002]
  進 宴之請其可以已乎匹庶之事父母猶皆遇慶餙喜逐年稱觴况小子忝居儲貳値此曠
  古罕有之 慶會與滿庭僚擧國民庶同其歡抃而不能奉一酌祝萬壽則其於爲人子爲
  人之心當何如哉夫過自損抑以豐亨豫大謂非今日之當務者
聖人秉謙之德也諒子之至情開其效誠伸忱之路者
聖人軆下之仁也以秉謙之德而忽軆下之仁則恐非
大聖人執中之道也矧惟我
明成聖母之懿範洪烈助內治而贊 聖化實啓我中興之運而時値陽九 徽音永邈大勳已集
  大慶荐臻而俱未有以仰逮焉小子之至慟在心民之寃欝莫洩今日追 上之請雖不足以仰慰
 在天之靈而其在子之情顧可以已乎此則不待小子之屢懇而伏想已有所戚然犂然於
 聖衷者矣於乎今日之請非小子一人之言乃擧國民公同之言也非小子徑情之懇乃
祖宗列聖已行之例也非伊人情之私乃天理民彜之所當然也以我
父皇陛下之至仁至聖寧不照燭於斯乎雖欲拒之必有不可得以終拒者矣伏乞
 淵然深思幡然勉回 特
 允羣請亟令禮院按例擧行千萬幸甚
  答曰知道苟有其實而不有其名亦固無損如未然者其於名何爾之連日觸寒懇拳之孝思亦
  不可不念進號之節不得已勉從至如豊豫之擧以今民事其能安於朕心乎且待明秋亦固未
  晩其在養志之道宜有諒之者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