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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유고(玄巖遺稿)

자료명 현암유고(玄巖遺稿) 저자 崔有淵(帆鮮, 1568 - ?) 撰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최유연(범선,1568-?)찬(崔有淵(朝鮮,1568-?)撰)
청구기호 K4-6662 MF번호 MF16-494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集部/別集類/詩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전자도서관(SJ_L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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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처전자도서관
번호114436
서명玄巖遺稿
저자崔有淵(帆鮮, 1568 - ?) 撰
판사항木版
간사사항肅宗1(1675)
청구번호K4-6662
MF번호MF16-494
형태사항線裝 4卷 1冊;四周雙邊, 半郭 19.6 × 14.7 cm, 有界, 半葉 10 行 20 字, 註雙行, 內向 一 - 二葉花紋魚尾29.6 × 18.8 cm
인기印 : 韓山李奎象像圭印. 李王家圖書之章
안내정보
해제~ 24-1900 현암유고 (玄巖遺稿)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최유연(崔有淵, 1568∼?)의 시문집. 4권 1책. 목판본. 저자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성지(聖止), 호는 현암(玄巖). 아버지는 준(濬)이며,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로 종명(宗溟)의 딸이다. 1623년(인조 1) 개시문과에 갑과로 급제, 이듬해 주서가 되고 지평·부승지를 거쳐 승지에 이르렀다. 이 책은 1675년(숙종 1) 생질인 충청도관찰사 맹주서(孟胄瑞)가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맹주서의 발문이 있다. 이 발문에는 저자의 저술이 상당히 많으나 그 가운데에서 시문(詩文) 약간만을 추려 간행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권1·2는 시 222수, 권3은 시 22수, 부(賦) 3편, 권4는 논(論) 2편, 설(說) 1편, 기(記) 7편, 명(銘) 1편, 전(傳) 1편, 별집(別集)은 시 6수, 서(序) 2편, 부(賦) 2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대개 만년에 진주 악양(岳陽)에 퇴거한 뒤의 소요자적(逍遙自適)을 읊조린 것으로 지구(知舊)들을 생각하여 지어준 시들도 간간이 보인다. 오언고시로는 양원(楊元)·양호(楊鎬)·송상현(宋象賢)·김여물(金汝<물0x6127>)·고경명(高敬命)·조헌(趙憲)·이순신(李舜臣)·권필(權<필0x799D>) 등의 〈팔애시 八哀詩〉를 지어 그들의 절조(節操)·용쟁(勇爭)·공덕(功德)들을 높이 찬양하면서 애석해 하였다. 또 칠언고시 중 〈만월대 滿月臺〉는 회고시(懷古詩)로서, 당시 흥성하였던 고려의 왕궁 터가 황폐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그 처절함을 읊었다. 〈별빈부 別貧賦〉에서는 스스로의 빈궁함을 노래하고 은근히 자기의 문장력을 자랑하였는데, 옛 양자운(揚子雲)의 〈축빈부 逐貧賦〉와 한유(韓愈)의 〈송궁문 送窮文〉은 문(文)으로써 희롱한 것이라고 하면서 만약 양자운과 한유가 빈천함을 괴롭게 여겨서 〈축빈부〉와 〈송궁문〉을 지었다고 여긴다면 그들을 아는 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공자가 벼슬과 녹을 구하지 않고 도덕을 구하였다는 말을 들어 자기는 양자운과 한유와는 달리 직접 가난을 체험하면서 학문을 즐긴다는 뜻이며, 고관에서 물러난 자로서 자기의 청렴결백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응지구언진치안경제서천인상감설소 應旨求言進治安經濟書天人相感說疏〉는 왕의 명을 받아 〈치안경제서〉 27조항과 〈천인상감설〉 1편을 올리면서 쓴 것으로, 국정 운영에 대한 우국충정이 어린 직언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두 글이 이 책에 실려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장서각도서에 있다. 〈盧弘斗〉
청구번호_정렬01_K4-6662
자료분류고서 > 장서각 본도서 > 한국본 > 集部 > 別集類 > 詩文
CLASSCODEJAKD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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