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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

자료명 상촌선생집(象村先生集) 저자 申 欽(朝鮮) 撰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신흠(조선)찬(申欽(朝鮮)撰)
청구기호 K4-6113 MF번호 MF35-455~457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集部/別集類/詩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전자도서관(SJ_L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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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처전자도서관
번호113832
서명象村先生集
저자申 欽(朝鮮) 撰
판사항木版
간사사항仁祖 14(1636)
청구번호K4-6113
MF번호MF35-455~457
형태사항線裝 本集 60卷, 附錄 3卷, 合 18冊:四周雙邊, 半郭 19.8 × 14.2 cm, 有界, 半葉 10行 20字, 內向混入花紋魚尾;20.5 × 19 cm
인기印 : 李王家圖書之章
안내정보
해제~ 11-1221 * 상촌집〈2〉 (象村集)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申欽)의 시문집. 63권 22책. 목판본. 이밖에 18책본·20책본 등이 있고, 명칭도 〈상촌선생문집 象村先生文集〉·〈상촌집 象村集〉·〈상촌고 象村稿〉 등이 있다. 초간본은 신흠이 죽은 지 2년 후인 1630년(인조 8)에 그의 아들 익성(翊聖)이 22권으로 간행하였다. 그런데 장유(張維)와 김상헌(金尙憲)의 서(序)는 그 전 해인 1629년에 쓰였고, 또 거기에서 장유는 39권, 김상헌은 38권이라 하였지마는, 권수의 이러한 차이는 원래 39권 또는 38권으로 간행을 예정했다가 완간된 것은 22권이었다고 보아야 하겠다. 그 뒤 1631년에 39권 본이 나오고 1633년에 따로 33권 본이 나왔는데, 22권 본을 낼 때 제외되었던 것이 덧붙은 결과로 보인다. 재간본은 신흠의 조카 신익량(申翊亮)이 간행한 태인각본(泰仁刻本)이며, 현재와 같은 63권본은 1765년에 중간된 것이다. 이렇게 〈상촌집〉은 중간을 거듭하면서 본집 60권, 부록 3권으로 정형(定型)되었으며 제책형편(製冊形便)에 따라서 18책·20책·22책본 등으로 분책된 것으로 보인다. 구성을 보면, 권1은 사(辭)·부(賦), 권2는 풍(風), 권3∼4는 악부(樂府), 권5∼21은 시, 권22는 서(序), 권23은 기, 권24∼28은 묘지명·묘표·묘갈명·신도비명, 권29는 행장, 권30은 애사·제문, 권31은 잡저, 권32는 소차(疏箚), 권33은 계(啓), 권34는 설(說), 권35∼36은 서독(書牘), 권37은 제발(題跋), 권38은 응제록(應製錄)으로 여기까지가 본집에 해당되며, 권39∼40은 잡저로 내집이고, 권41∼46은 휘언(彙言), 권47∼48은 야언(野言)으로 외집이다. 그리고 권49는 산중독언(山中獨言), 권50은 강상록(江上錄), 권51∼54는 구정록(求正錄), 권55는 선천규관(先天窺管), 권56은 지(志), 권57은 중국에서 파견된 인물(임진왜란 때)에 관한 기록, 권58∼60은 청창연담(晴窓軟談)으로 독립적인 저술에 해당되며, 권61∼63은 부록이다. 이렇게 볼 때 〈상촌집〉의 구성은 한마디로 다양하고 폭넓은 것이 그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문학이 있고 도학이 있으며 고금(古今)의 유학이 평정(評定)되어 있는가 하면 문필가의 풍류가 있고 조선과 명나라의 사상이 같이 교류되고 있으며, 도덕과 공업, 또 이를 담은 역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각 부문별로 내용을 살펴보면, 시 부문에 있어서는 여러 형태의 시 및 사(詞)가 골고루 있고, 특히 고시(古詩)와 악부에 힘을 기울여 이를 그의 시작세계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고문부흥기의 기수로서의 그의 편모를 나타내준다. 한편, 산문부문에 있어서는 서문류(序文類) 25수 가운데서 시고서 (詩稿序)가 8수이고, 문집서(文集序)가 2수인 것으로 보아 시 세계로 향한 그의 관심의 비중을 알 수 있다. 송인서(送人序) 9수 가운데서 조경송인서(朝京送人序)가 4수인 것은 그의 문집서에 강왈광(姜曰廣)을 비롯한 명나라 사람의 서문이 많은 것과 더불어 그의 문장과 교 우(交友)가 지닌 국제성을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 (記) 가운데서는 〈낙민루기 樂民樓記〉·〈근민헌기 近民軒記〉가 특이하다. 잡저에는 그의 학문의 요처인 〈심학편 心學篇〉에서 시작하여 재용(財用)·용병 (用兵) 등의 경세(經世)에 이르는 사상이 나타나 있고, 〈휘언〉에는 역대의 치란(治亂)을 논한 사론(史論), 인물론, 국사관(國史觀), 그의 정치적인 식견을 담은 정론(政論) 등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어서 정치가로서의 그의 편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야언〉과 〈산중독언〉은 유배중에 그의 수상(隨想)과 언론을 담은 글이며, 〈강상록〉은 노량〔鷺〕에서 적배(謫配)의 명을 기다리며 쓴 것으로서, 그의 유배경위와 정경이 상세히 기록된 일종의 신변잡기이면서 당시의 당쟁을 알 수 있게 하는 야사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료적(史料的)인 가치를 본격적으로 지니고 있는 글은 56권에 있는 지(志)인데, 대부분 그가 종군했거나 체험한 임진왜란의 사료들로서 〈임진왜구구흔시말지 壬辰倭寇構〈흔0x7D4B〉始末志〉·〈본국피무시말지 本國被誣始末志〉·〈본국피병지 本國被兵志〉·〈제장사난초함패지 諸將士亂初陷敗志〉·〈천조선후출병내원지 天朝先後出兵來援志〉 등이 그것들이다. 57권의 〈천조조사장신선후거래성명기 天朝詔使將臣先後去來姓名記〉 또한 귀중한 사료인데, 설번(薛藩) 등 조사(詔使)와 송경략(宋經略)·이제독(李提督) 이하의 각 아문별로 군관·장신들의 출신·과환(科宦)·내원(來援) 등에 관한 기록이므로 이를 통하여 임진왜란 때에 파견된 명군(明軍)의 구성이나 성격을 분석할 수 있다. 한편, 〈선천규관〉과 〈구정록〉은 경학 내지는 도학사상을 담은 일종의 철학서이고, 끝에 있는 〈청창연담〉은 주로 그의 문장론, 문학관 및 우리나라와 중국의 시문 (詩文)과 작가에 대한 논평을 실은 일종의 평론서이다. 끝으로 부록 3권에는 장유가 찬(撰)한 시장(諡狀), 김상헌이 찬한 행장(行狀), 이정구(李廷龜)가 찬한 신도비명, 이수광(李〈수0x6759〉光)이 찬한 묘지명병서(墓誌銘幷序) 및 이정구 이하 선조∼인조간의 명류(名流)가 거의 망라된 듯한 제문·만사가 실려 있다. 이렇게 폭넓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상촌집〉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중시된다. 첫째, 그가 장유·이정구·이식(李植)과 더불어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힐 만큼, 고문부흥의 기수로서 그의 시문의 정수(精髓)가 담겨져 있다. 둘째, 그가 도학전성기였던 선조대에 생장하고 수학함으로써 체득했던 광범위한 성리학적 체계나 다양했던 사상적 내용이 함께 담겨져 있다. 셋째, 그가 왜란 및 호란이란 외환이나 당쟁이 빚은 기축옥사·광해군의 난정(亂政)과 인조반정 및 그 부작용인 이괄의 난 등의 내우로 점철된 선조∼인조간을 살아야 했던 만큼, 그간의 활동이 경륜 및 사론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상촌집〉이야말로 그의 문인이자 호란 때의 난국을 수습했던 최명길(崔鳴吉)이 문장·도덕·공업이 세상에서 추허(推許)하는 바라고 발문(跋文)에서 갈파했듯이, 그의 문학·학술·사상·도덕 및 공업을 함께 담은 것이며, 선조∼인조간의 중요한 사실 특히 왜란 때의 정치·외교·군사 및 사상에 관한 중요한 사료로서 간과해서는 안될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1981년에 종손가에 소장된 20책본을 대본으로 하고 장서각도서에 있는 18책본과 대교(對校)하여 경문사(景文社)에서 영인본을 냄으로써 널리 유포되고 있는데, 이 영인본에는 구두점과 고유명사 중심의 색인이 들어 있고, 윤남한 (尹南漢)의 해제가 있다. 〈崔雄〉
청구번호_정렬01_K4-6113
자료분류고서 > 장서각 본도서 > 한국본 > 集部 > 別集類 > 詩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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