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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운집(谷雲集)

자료명 곡운집(谷雲集) 저자 金壽增(朝鮮)撰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4-5760 MF번호 MF35-173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集部/別集類/詩文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전자도서관(SJ_L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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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113440
서명谷雲集
저자金壽增(朝鮮)撰
판사항木版
간사사항肅宗37(1711)序
청구번호K4-5760
MF번호MF35-1736
형태사항線裝 6卷3冊:四周雙邊, 半郭20 × 14.9㎝, 有界, 半葉10行20字, 註雙行, 上二葉花紋魚尾, 上黑魚尾;30.6 × 14.4 ㎝
인기印 : 金庚秀印, 李王家圖書之章
안내정보
해제~ 02-1261 곡운집 (谷雲集)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김수증(金壽增)의 시문집. 6권 3책. 목판본. 1711년(숙종37) 저자의 조카 창흡(昌翕)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창흡의 서문이 있다. 이 책은 권1·2에 시 547수, 권3·4는 가기(家記) 12편, 기 19편, 권5는 서(書) 43편, 제문 5편, 권6은 장지(狀誌) 4편, 잡문 14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시는 1675년(숙종 1) 송시열(宋時烈)과 동생 김수항(金壽恒)이 유배되자 성천부사를 사직하고 화천의 곡운(谷雲)으로 퇴거하여 산천을 벗하면서 주위의 자연을 읊은 것이 대부분이다. 주로 연작(連作)이 많은데, 〈성도술회 成都述懷〉·〈자영희부 自瀛戱賦〉·〈윤삼월초파일환화음 閏三月初八日還華陰〉·〈시월망일우이율북 十月望日又移栗北〉 등의 연작시가 10편이나 된다. 시의 흐름이 고아하고, 산수를 묘사한 것은 그 진경을 보는 듯한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기는 대부분 산천을 유람한 기행문이며, 그 중 〈풍악일기 楓嶽日記〉는 1680년(숙종 6) 가을 금강산을 두루 구경하고 그 아름다운 절경과 고적 등을 소개한 일기체의 기행문이다. 또, 〈곡운기 谷雲記〉·〈화음동지 華陰洞志〉·〈유지당기 有知堂記〉·〈무명와기사 無名窩記事〉·〈송풍정기 松風亭記〉 등은 곡운에 대한 기록인데, 그가 곡운을 화악산(華嶽山) 북쪽에 있다고 하여 화음동(華陰洞)이라 이름짓고, 그 자연경관을 완상하며 계곡에 곡운구곡(谷雲九曲)과 바위에 이름을 붙이고, 정자와 누대를 세운 경위를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화음동은 송시열이 만년에 강학하던 곳인 청주의 화양동(華陽洞)에 대조가 되는 명칭으로, 할아버지인 김상헌(金尙憲)의 배청척화론(排淸斥和論)과 송시열의 북벌론(北伐論) 내지 춘추대의(春秋大義)가 이념적으로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양구곡과 상응하여 곡운 및 화음구곡이 설정된 것이라 볼 수 있고, 그 사상계에 따라 이이(李珥)의 〈고산구곡 高山九曲〉과 주희(朱熹)의 〈무이구곡도가 武夷九曲櫂歌〉가 연원이 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 유지당(有知堂)을 세워 제갈 량(諸葛亮)의 화상과 김시습(金時習)의 친필족자를 모셨다는 기록은 그가 대의와 충절을 높이는 의리정신을 지키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그가 기거하던 부지암(不知庵) 앞 시냇가의 바위에 천근석(天根石)과 월굴암(月窟巖)과 인문석(人文石)으로 명명하여 음양과 천인(天人)으로 상대를 이루게 하였으며, 인문석 위에 태극도(太極圖)의 제2도인 음정양동도(陰靜陽動圖)와 하도낙서 (河圖洛書)와 복희팔괘·문왕팔괘의 3단계를 새겨넣었다. 그는 주희의 합조산고사(閤〈조0x7224〉山古事)를 본받아 역도(易圖)를 새긴 것이라 밝히고 있으며, 그 의미는 그의 사상 속에 《주역》의 비중이 크다는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書)는 박세채(朴世采)·권상하(權尙夏) 등 18인과 왕복한 서한이다. 잡문 중 〈김승경사실 金勝京事實〉은 병자호란 때 난을 피하여 오신산(五申山)으로 들어갔다가 붙들려 여진·몽고 등에까지 끌려갔다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로, 그곳의 풍속·지리·목축 등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당시의 일본과 청나라의 상태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1978년 김충현(金忠顯)이 영인, 간행한 《곡운집》에는 권두에 김창현(金彰顯)이 쓴 해제(解題)를 비롯하여 저자의 유묵(遺墨)·인기(印記)와 조세걸(曺世杰)이 그린 〈곡운구곡도 谷雲九曲圖〉가 있으며, 부록으로 가사(家史)·묘표·〈곡운제영 谷雲題詠〉이라는 제목 아래 송시열의 〈곡운정사기 谷雲精舍記〉·〈농수정기 籠水亭記〉 등 9편이 있어 송시열의 그에 대한 관심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 송시열이 쓴 〈서김연지와유록후 書金延之臥遊錄後〉와 작자미상의 〈금석총발 金石叢跋〉을 통하여 김수증이 편찬한 문헌으로 시문집인 《와유록》과 금석문을 모은 《금석총》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가 금석문과 글씨에 깊은 조예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宋子大全, 谷雲九谷圖를 중심으로 본 17세기 實景圖發展의 一例(兪俊英, 精神文化 8,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0). 〈琴章泰〉
청구번호_정렬01_K4-5760
자료분류고서 > 장서각 본도서 > 한국본 > 集部 > 別集類 > 詩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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