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정해친잠비(丁亥親蠶碑)

자료명 정해친잠비(丁亥親蠶碑) 저자 영조(英祖) 어필(御筆)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K3-791 MF번호
유형분류 고서/금석문 주제분류 子部/藝術類/書藝
수집분류 왕실/고서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 원문이미지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子部/藝術類/書藝
· 유형분류 고서/기타
· 수집분류 왕실/고서
· 청구기호 K3-791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생산정보 사업명: 21세기 장서각 연구사업 / 종류: 해제 / 일시: 20131031 / 지역: 13455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英祖 等筆

형태사항

· 크기(cm) 96.5 X 38.4
· 판본 탁본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영조1767년(영조 43) 경복궁 선잠단(先蠶壇)에서 친잠(親蠶)한 사실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의 전면(全面) 탁본이다.
서지사항
축(軸). 164.5×59.0 ㎝
체제 및 내용
비석이 세워진 시기는 이로부터 3년 후인 1770년(영조 46)이다. 『영조실록』 43년 1월부터 5월까지의 기사에는 친잠 준비로부터 날짜의 택일, 왕과 왕비의 친잠례와 친잠의(親蠶儀), 왕비의 작헌의(酌獻儀), 친잠 후의 조현의(朝見儀) 등 모든 의식과 절차가 기록되어 있다. 『영조실록』 46년 정월 9일 기사에는 "임금이 경복궁 친잠단의 비를 세운 곳에 나아갔다. 지난 정해년의 친잠 때에 단을 근정전 북쪽에 쌓고 오소례(五繅禮)를 행한 바 있었는데, 이때에 와서 임금이 '정해친잠'이란 네 글자를 직접 써서 돌에 새기고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비음기(碑陰記)를 지어 기록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탁본에는 실록의 기사와 같이 "御筆 丁亥親蠶 七旬七書"라 쓰여 있다.
특성 및 가치
영조는 조선 왕조의 사적(史蹟)을 담고 있는 경복궁의 상징성에 주목하고 선왕대의 여러 행사와 의례를 설행함으로써 선왕에 대한 계술(繼述)을 표방하고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다. 경복궁에서의 친잠례와 친잠비의 건립은 그러한 상징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46년(1770) 1월 9일(丁亥)
『영조대왕자료집(英祖大王資料集) 5』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집필자

성인근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