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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김태석인존(惺齋金台錫印存)

자료명 성재김태석인존(惺齋金台錫印存) 저자 편자미상(編者未詳)
자료명(이칭) 惺齋金台錫印存 저자(이칭) [編者未詳]
청구기호 K3-570 MF번호 MF16-328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子部/藝術類/篆刻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전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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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자부
· 작성시기 간사년미상(刊寫年未詳)
· 청구기호 K3-570
· 마이크로필름 MF16-328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편자미상(編者未詳)

형태사항

· 크기(cm) 14.1 X 9.4
· 판본 영인본(影印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16장(張))
· 인장 奉謨堂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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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전각가 惺齋 金台錫(1875~1953)의 인보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본래의 題簽이 떨어지고 남은 종이에 필사되어 있다. 四針眼 線裝에 卍字紋 비단으로 장황되어 있다. 전체 16張이며 각 장의 첫 면에만 인장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김태석葦滄 吳世昌과 더불어 한국 근현대 전각계의 쌍벽을 이룬 인물이다. 중국에서 18년 동안 체류하면서 많은 전각활동을 했으며 1912년 중화민국의 초대총통이었던 袁世凱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國璽를 제작하고, 그의 서예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1938년부터 7년간 일본에 체류한 이후, 大東翰墨會를 조직해 서예 전각을 통한 후학양성에 힘썼다. 중국·청대 인장과 일본의 근대 전각을 널리 익혀 한국 근현대 전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도서에 그의 인장 35점이 실렸는데 인문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면: 古鼎山房(음각장방인) 好學爲福(양각장방인)
2면: 黃華後朱實食之壽命長(음각장방인)
3면: 艸見鳥色更靑(양각다원인) 曾經滄海(양각부정형인)
4면: 金台錫印(음각방인)
5면: 惺齋(양각방인)
6면: 得心應手(양각방인) 情之所鍾(음각방인)
7면: 台錫之印(음각방인) 惺齋(양각방인)
8면: 辛卯司馬(음각방인) 未詳(양각방인)
9면: 碧梧翠竹山房(음각타원인) 大吉祥(양각장방인) 氷心(양각 瓢形印)
10면: 台錫(음각방인) 惺齋翰墨(양각방인)
11면: 雕蟲(양각장방인) 不逐隊行(양각방인) 身外浮雪(음각방인)
12면: 游方之外(음각방인) 煙霞散人(양각방인)
13면: 惺齋(양각방인) 金台錫印(음각방인)
14면: 志士多苦心(음각방인) 海內存知己(양각방인)
15면: 唯吾德馨(음각장방인) 台錫私印(음각방인) 惺齋(양각방인) 草草不工(양각 葉形印)
16면: 一片氷心(음각장방인) 心田畊夫(양각방인) 台錫(음각방인) 惺齋(양각방인)

본 도서에 실린 인영 중에 간혹 오세창의 전각풍과 흡사한 것이 있고, 淸末民國初에 서화·전각가로 유명했던 白石 齊璜의 전각풍도 보인다. 한편 海內存知己는 장서각 소장 『阮堂印譜』(K3-573)에 동일한 예가 있어 김태석이 이를 모각한 것으로 추측된다. 김태석의 인장과 인보의 상당수는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東遊印譜』, 『乘槎印譜』, 『東遊印譜』 등과 함께 김태석의 전각풍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국립민속박물관, 『韓國의 印章』, 삼화서적주식회사, 1987.
한양대학교 박물관, 『한국인과 인장』, 한양대학교 박물관, 2011.
이연숙, 『惺齋 金台錫의 篆刻 硏究』, 대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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