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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상당첩(宅相堂帖)

자료명 택상당첩(宅相堂帖) 저자 윤정기(尹廷琦)
자료명(이칭) 宅相堂帖 저자(이칭) 윤정기(조선.1810-?)(尹廷琦(朝鮮)編) , 尹廷琦(朝鮮.1810 - ?)
청구기호 K3-535 MF번호 MF35-446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子部/藝術類/書藝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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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자부
· 작성시기 1851(철종 2년)
· 청구기호 K3-535
· 마이크로필름 MF35-44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윤정기(尹廷琦) 등(等)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27.3 X 16.7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절첩장(折帖裝)
· 수량 1첩(帖)(19절(折))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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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정약용의 아들 丁學淵(1783~1859), 丁學澈(1786~1855)와 외손 윤정기(1814~1879) 등이 지은 국영시 19수를 엮은 시첩이다.
서지사항
테두리를 그린 종이 題僉에 서명을 필사하였다. 총 38면이고, 각 첩마다 끝에 다양한 크기가 형태의 인장이 날인되어 있다. 마지막 면에 발문이 있다. 이면지를 사용하였다.
체제 및 내용
표지서명 ‘宅相堂帖’에서 ‘택상’은 甥姪의 별칭으로, ‘택상당’이란 곧 외가를 지칭한다. 시첩의 첫머리에 대자행서로 1면에 1자씩 ‘菊影詩卷’이라 쓰여 있다. 이 국영시권은 이 첩의 內題로 볼 수 있다. 이 시첩의 제작경위는 말미에 수록된 윤정기의 발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851년(철종 2) 정약용의 외손자인 윤정기는 다산가가 있는 경기도 양주의 두릉을 방문하였는데, 이때 정학연, 정학유 두 숙부가 지은 국영시를 보았다. 때마침 잔치가 있어 집안사람들이 모두 모이고 손님들도 몇 사람 참여하였다. 이 기회에 참여자들은 국영시를 창작하였고, 이 시들을 모아 정학연이 직접 써서 첩으로 제작하여 윤정기에게 준 것이다.
시첩의 작자는 우선 다산가의 사람들로 정학연, 정학유 외에 정학연의 아들인 정대림, 정학유의 세 아들인 정대무, 정대번, 정대초, 종질 정대본까지 모수 일곱 사람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생질인 윤정기, 외손 김선표 외에 윤종삼이 보인다. 윤종삼은 『다산계절목』에 올라 있으며 정약용강진 유배 시절 제자이다. 그 외에 ‘霞汀道人’이 보이는데, 두릉 부근에 기거하며 정학연 집안과 가까이 지낸 친우인 듯하다.
국영시는 촛불에 비친 국화 그림자를 대상으로 지은 시를 말하며, 명나라 말기 公安派의 주역인 袁宏道로부터 시작되었다. 정학연정학유 형제의 아버지인 정약용 또한 正祖 연간의 仕宦期에 竹欄詩社를 결성하고 활발한 詩會를 벌였는데, 여기에서 菊影을 감상하는 모임을 자주 갖고 시를 지었다.
특성 및 가치
정약용 후손과 윤정기의 돈독한 우의를 확인할 수 있다. 정약용 때로부터 비롯된 원굉도 문학의 家傳 양상을 확인할 수 있고, 정학연 서체의 전형을 확인할 수 있다. 장서각에 소장된 『丁黃契帖』(C10C-62) 역시 정학연이 직접 쓴 필첩이다.

참고문헌

菊影詩序」, 정약용, 『여유당전서』 1, 신조선사, 1936.
「『택상당첩』·『정황계첩』 해제」, 신익철, 『택상당첩·정황계첩』, 한국학중앙앙연구원, 2006.
다산과 다산학단의 국영시 창작과 그 의미」, 신익철, 『한국실학연구』 16, 한국실학학회, 2008.KCI

집필자

성인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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