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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자헌대부내부대신겸홍문관경연관시강원서연관이공시장(贈資憲大夫內部大臣兼弘文館經筵官侍講院書筵官李公諡狀)

자료명 증자헌대부내부대신겸홍문관경연관시강원서연관이공시장(贈資憲大夫內部大臣兼弘文館經筵官侍講院書筵官李公諡狀) 저자 남정철(조선)(南廷哲(朝鮮)) 찬(撰)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南廷哲(朝鮮) 撰. 隆熙 4(1910) 寫
청구기호 K2-827 MF번호 MF35-1092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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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10(융희 4년)
· 청구기호 K2-827
· 마이크로필름 MF35-1092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남정철(南廷哲)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42.2 X 27.8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0.9×21.2cm
· 인장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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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純祖 대의 학자로 資憲大夫 內部大臣 兼弘文館經筵官侍講院書筵官에 贈職된 李運榮에게 諡號를 내려주기를 청하는 諡狀으로 1910년 8월에 南廷哲이 찬했다.
서지사항
四周單邊, 半葉 10行, 無魚尾의 필사한 朱色 印札空冊紙를 사용한 필사본으로, 모두 세 장이다. 表紙書名은 ‘李公運榮諡狀’이다. 권말에는 1910년(융희 4)南廷哲이 썼다는 기록이 있어 필사 연대를 알 수 있다. 뒤표지 面紙 하단에 1971년 3월 藏書閣에서 再裝하였다는 기록이 필사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 시장은 李運榮(1777~1835)의 先系, 生涯, 後孫, 贈職事實 및 學行 등을 서술하고, 이러한 개략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이운영에게 증시할 것을 청하고 있다. 崇政大夫 前行禮曹判書 弘文館學士 남정철(1840~1916)이 1910년 8월에 시장을 작성하였다.
이운영의 본관은 慶州이고, 자는 稺明이다. 1854년(철종 5)趙斗淳이 筵席에서 강론할 때 奏請하여 司憲府 持平에 증직되었고, 1887년(고종 24)沈舜澤이 또한 연석에서 강론할 때 주청하여 吏曹參議 兼成均館 祭酒 侍講院 贊善에 증직되었으며, 후에 아들 圭復이 귀하게 되어 資憲大夫 內部大臣 兼經筵官 書筵官에 증직되었다.
고종실록』에는 1887년 5월 3일의 기사에 “持平의 벼슬을 추증한 이운영은 행실이 순박하고 독실하여 일찍이 표창하는 은전을 베풀어 주었으나, 이와 같은 사람에 대해 벼슬을 더 추증한 전례가 많이 있으니 특별히 吏曹參議祭酒의 벼슬을 추증하여 착한 것을 표창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으며, 『순종실록』에서는 1910년(순종 3) 8월 25일에 贈內部大臣 이운영은 학문이 뛰어나고 지조와 행실이 단정하여 특별히 시호를 내리는 은전을 시행하도록 하였으며 8월 26일에 文簡이라는 諡號를 내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관보(隆熙四年八月二十九日)에 의하면, 文簡의 諡註는 ‘勤學好問曰文 一德不懈曰簡’이라는 뜻이었다.
이운영은 관직상으로는 증시 대상이 아니지만, 『大典通編』 규정에 새로 수록된 “유학으로 현명이 있는 자 및 절의에 죽은 사람으로서 특히 드러난 자에게 증시를 허락한다.”는 규정에 입각하여 본 시장이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성 및 가치
이운영의 생애 및 후대의 추숭 과정, 1900년대 초 증시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집필자

임선빈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