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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선생실기(竹林先生實紀)

자료명 죽임선생실기(竹林先生實紀) 저자 권치근(權致根)
자료명(이칭) 竹林先生實紀 저자(이칭) 權致根(朝鮮) 編
청구기호 K2-821 MF번호 MF35-1343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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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92(정조 16년)
· 청구기호 K2-821
· 마이크로필름 MF35-1343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권치근(權致根)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1.3 X 21.0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6×16.3cm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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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단종 대 절신인 權山海의 생애와 후대의 伸寃 復官 및 追贈 襃奬과 관련된 자료를 모은 문집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竹林世稿’, 版心題는 ‘竹林實紀’이며, 書根題는 ‘竹林’이다. 표지 서명의 하단에는 ‘單’으로 표기되어 있다. 장서각 소장 동일서명 『竹林先生實紀』(K2-822)와 같은 판종이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다. 竹林은 단종 대의 절신인 權山海(1403~1456)의 호이다. 龍宮 大竹里에서 태어나 죽림을 자호로 삼았다고 한다. 권산해의 본관은 安東, 자는 德甫이다. 1440년(세종 22)에 천거되어 녹사·주부가 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으며, 1454년(단종 2)에 처음으로 宗簿寺 僉正이 되었다. 1455년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울분을 못 이겨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權自愼·成三問 등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옥에 갇히자 스스로 한탄하다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뒤에 체포령이 내려졌으나 이미 죽은 후였다. 그리하여 관직을 박탈당하였으며, 자손들도 백 년 동안 벼슬길이 막혔다. 1789년(정조 13) 12대손인 권종락의 격쟁 상소로 伸寃復官되고, 1791년(정조 15) 송문기를 비롯한 경기·경상·충청 세 도 유생의 상언으로 정문이 내려지고 이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다시 1885년(고종 22)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1902년(고종 39)忠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 『죽림선생실기』는 정문이 내려지고 이조참판에 증직된 다음 해인 1792년에 편찬된 것이다. 따라서 이조판서에 추증된 내용과 시호가 내려진 사실은 포함되지 않다. 서문은 柳致明, 발문은 李尙度(慶州府尹)와 李鍾祥이 찬했다. 상권은 遺事, 竺山誌, 莊陵誌列傳, 竹林節士傳, 記聞錄에 이어, 1789년의 신원 복관될 때의 관련 자료인 原情草, 刑曹回啓, 吏曹回啓, 焚黃時告墓文, 1791년의 충신 정려 및 이조참판 증직이 내려질 때의 관련자료인 請旌贈上言, 禮曹回啓, 大臣獻議, 焚黃時告墓文, 贈牒權奉時告由文, 旌忠閣上樑文, 旌忠閣記, 旌忠閣重修後識 등에 이어, 雲谷書社陞配時告墓文, 奉安文, 復爵時告由文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권은 壙誌, 墓碣銘, 碣陰後序, 遺墟碑文, 神道碑銘, 行蹟, 行狀, 大學通文, 道儒呈繡衣文, 神理後感賀詩, 鴨脚樹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단종 대 절신의 한 명인 권산해의 생애를 정리해 보여주고 있으며, 조선 후기 신원 복관 및 추증 과정, 충신 정려 과정 등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집필자

임선빈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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