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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영목시장(金公永穆諡狀)

자료명 김공영목시장(金公永穆諡狀) 저자 남정철(南廷哲)
자료명(이칭) 금공영목시장(金公永穆謚狀) , 金公永穆謚狀 저자(이칭) 南廷哲(朝鮮) 撰
청구기호 K2-707 MF번호 MF35-1878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別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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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903(광무 7년)
· 청구기호 K2-707
· 마이크로필름 MF35-1878
· 기록시기 1903~1907年(光武 7~11)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남정철(南廷哲) 찬(撰)

형태사항

· 크기(cm) 32.8 X 23.6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5×15.2cm
· 인장 藏書閣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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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조선 말기의 文臣인 金永穆(1835~1903)에게 諡號를 내려주기를 청원하기 위해 南廷哲(1840~1916)이 찬술한 諡狀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金公永穆謚狀’이며, 書根題는 없다. 구 표지가 남아 있는데, 서명은 개장한 표지 서명과 같다. 본문은 흑색 목판 인찰공책지에 淨書하였다. 권말에는 “一九七二年七月 藏書閣再裝”이라는 재장 기록이 있다.
체제 및 내용
이 諡狀은 남정철김영목의 아들 天洙의 부탁을 받고 쓴 글이다. 남정철김영목과 40년이 넘도록 교유했던 터라, 기꺼이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시장의 구성은 ‘찬술 동기 - 가계 - 관력 - 배위와 자손 - 평생의 품행 - 인물 평가’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시장에 따르면 김영목은 본관이 光山, 자가 淸友이다. 沙溪 金長生(1548~1631)의 후손으로, 생부는 曾鉉이며, 周鉉에게 입양되었다. 1861년(철종 12)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承政院左承旨, 成均館大司成, 刑曹參判, 兵曹參判, 宮內府特進官, 祕書院卿, 掌禮院卿, 弘文館學士 등을 역임했고, 洪陵重修都監 提調 등 山陵의 직임을 맡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어려서부터 聰穎함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고, 天賦의 孝悌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늙어 失明하자 곁에서 돌보며 稗說을 읽어 위로하였다. 季父 金尙鉉(1811~1890)에게서 禮學과 性理說을 배웠다. 國朝의 典故를 환히 꿰었으며, 古今의 治亂과 人物의 美惡에 대한 그의 평가는 들을 만하였다. 교유함에 경계를 두지 않아 벗들의 推重을 받았는데, 특히 閔台鎬(1834~1884), 閔奎鎬(1836~1878), 韓章錫(1832~1894), 金永壽(1829~1899) 등과 교유가 깊었다. 또한 風流가 넉넉하여 재상감으로 일컬어졌으며, 筆法이 遒麗하여 米芾董其昌의 정수를 얻었다.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하여 김영목에게 1910년(순종 3) 7월 26일에 文憲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시장의 찬술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시장의 내용에 高宗을 ‘皇上’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김영목이 세상을 떠난 1903년부터 고종의 재위인 1907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김영목의 생애에 대한 연구에 기초 자료로 삼을 수 있다.

참고문헌

純宗實錄 URL

집필자

이태희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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