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왕후행장초(神貞王后行狀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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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정보 해제 xml
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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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
· 청구기호 | K2-662 |
· 마이크로필름 | MF35-1880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 가치정보 | 유일본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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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미상(編者未詳) |
형태사항
· 크기(cm) | 33.5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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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필사본(筆寫本) |
· 장정 | 선장(線裝) |
· 수량 | 1책(冊) |
· 인장 |
藏書閣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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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정보
내용
정의
익종의 비 神貞王后 조씨의 일생을 기록한 행장의 草本이다.서지사항
表紙書名은 ‘神貞王后行狀草’이다. 구표지가 남아 있는데, 개장된 표지와 서명이 같고, 서명의 아래에 ‘計拾四冊’이 기재되어 있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종이에 淨書하였다.체제 및 내용
신정왕후(1808~1890)는 풍양조씨 趙萬永(1776~1846)의 딸로서, 1819년 純祖의 장자인 효명세자(익종, 문조 추숭, 1809~1830)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그러나 1830년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4년 만에 세상을 떠나 왕비에 즉위하지 못했다. 아들 憲宗(재위 1834~1849)이 즉위한 후 왕대비가 되고 哲宗(재위 1849~1863) 대에 대왕대비가 되었으며, 高宗(재위 1863~1907)이 즉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행장에서는 신정왕후가 1834년 아들인 헌종이 즉위하면서 왕대비가 되고 1837년에는 孝裕, 獻聖의 존호를 받은 일, 철종이 즉위하고 2년 만에 宣敬 正仁 慈惠 弘德의 존호를 받은 일을 기록했다. 또 헌종의 입승대통과 孝顯王后(1828~1843), 孝定王后(1831~1903)에 대해 서술하고, 고종과 고종비 明聖王后(明成皇后 추존, 1851~1895) 등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이후에는 신정왕후가 총명하고 덕이 깊어 역대의 역사에 조예가 깊었다거나 6德이 있었다고 그 인품을 추모했다. 그 결과 周의 任似나 宋의 宣仁太后와 같이 사직을 보존한 공이 있었다고 칭송하였다. 그리고 수렴청정 초에는 백성의 민생을 돌본 공로가 컸다고 찬하였다. 세상을 뜬 후 시호를 신정, 휘호를 景勳, 哲範으로 殿號를 孝慕로 정한 사실과 경복궁 흥복전에서 83세를 일기로 승하할 때까지 각종 의례와 행사를 주관한 사실 등도 기록하였다. 마지막으로 고종이 익종과 헌종의 대통을 잇게 된 것이 신정왕후와 관련 있었음을 언급하면서 조선의 왕통이 정조·순조·익종·헌종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사실도 서술하였다.특성 및 가치
본 자료는 고종 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신정왕후의 행장 草稿 자료로, 『高宗實錄』의 신정왕후 행장과 같은 체제와 내용을 보인다. 이 내용은 『高宗實錄』 27권의 고종 27년 8월 30일 조 ‘대행대왕행장’에 실려 있다. 장서각에만 소장되어 있는 유일본이다. 19세기에 오랜 기간 대비, 대왕대비로 자리하면서 조선 후기 왕통 승계에 큰 영향을 끼친 신정왕후의 행장이므로 19세기 왕통 승계와 관한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참고문헌
집필자
신병주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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