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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자료명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저자 박세채(朴世采), 이세환(李世瑍)
자료명(이칭) 東儒師友錄 저자(이칭) [編者未詳]
청구기호 K2-407 MF번호 MF35-1868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叢傳/一般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전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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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사년미상(寫年未詳)
· 청구기호 K2-407
· 마이크로필름 MF35-1868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역할 인명 설명 생몰년 신분
박세채(朴世采)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29.3 X 21.9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0권(卷) 1책(冊)(전(全) 24권(卷) 1책(冊))
· 인장 李王家圖書之章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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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682년(숙종 8) 朴世采(1631~1695)가 新羅에서 朝鮮 宣祖代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道學師友의 淵源을 모아 편집한 것에 그의 제자인 李世瑍이 追補한 先儒들의 淵源錄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東儒師友錄’이며, 書根題는 없다. 제첨은 테두리가 목판으로 인쇄되었고, 서명은 필사하였다. 표지는 흰색으로 卍字文이며, 五針眼으로 線裝되었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종이에 필사하였는데, 흑색으로 밑줄, 꺾쇠 표시를 하거나 비점을 찍기도 하였다. 또한 서미에 주제어가 필사된 부분이 있다. 전체 1책 24권 중 제15~24권만 남은 영본이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박세채가 저술한 『동유사우록』 가운데 제15권 「李灘叟(李延慶)門人」부터 제24권 「花潭(徐敬德)先生門人」까지에 해당한다. 앞부분에는 ‘孟子集註抄’가 필사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이면에 필사한 것이어서 판독하기에 불편하다. 韓國敎會史硏究所 소장본과 비교해 보면, 일치하지 않은 면이 있어 본서는 그것의 초고본이거나 다른 계열의 이본이 아닌가 판단된다. 또한 제24권 「화담선생문인편」의 말미를 살펴보면, 한국교회사연구소본은 「韓石峯(仁)」과 「韓炯齋」를 마지막에 정리하고 있는 반면, 본서는 그다음에 「鄭困齋」와 「中庶名人」이 추가된 점이 하나의 증거가 된다.
박세채가 편찬할 때 모본이 되었던 책은 주희의 『伊洛淵源錄』과 이황의 『理學通錄』이었다. 박세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聖學이 고려 말 포은 정몽주에 의해 다시 밝게 빛나게 되어 뛰어난 유학자들이 배출되었으므로 그들의 행적을 채록하여 후학들이 존중하고 모범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고, 문헌의 인멸을 방지하기 위해 저술한 것이다.
편집 방식은 해당 인물에 관한 傳記, 行蹟, 行狀, 墓誌, 墓碑 및 序, 說, 詩, 誄 등의 자료를 그대로 제시하고 전거를 표기하였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述而不作의 자세를 견지한 것이다. 그러나 인명 표기는 『春秋』의 書法을 적용하여 인물에 대한 박세채 자신의 평가를 나타냈다. 즉 加謚加號, 稱號, 稱官, 稱字, 稱名을 엄격히 구분하여 사용하는 褒貶을 한 것이다. 예컨대 정몽주정도전을 각각 ‘文忠公圃隱先生’과 ‘鄭道傳’으로 표기하여 不事二君과 易姓革命을 성리학적 관점에서 포폄한 것이다.
박세채는 17세기 노소분기의 와중에 송시열윤증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였고, 학문적 전통으로 보아도 서인 계통의 학자이다. 따라서 이러한 당파적 입장과 학문적 입장이 수록 인물에도 투영된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퇴계 이황에 관한 분량은 한 권이지만, 율곡 이이는 두 권, 우계 성혼의 문인은 120여 명을 소개하고 있다.

집필자

이동인
범례
  •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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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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