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묘중흥지(宣廟中興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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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 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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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
· 청구기호 | K2-226 |
· 마이크로필름 | MF35-304 |
·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 가치정보 | 귀중본 |
작성주체 - 인물
역할 | 인명 | 설명 | 생몰년 | 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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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겸(辛錫謙) 저(著) |
형태사항
· 크기(cm) | 36.8 X 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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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본 | 필사본(筆寫本) |
· 장정 | 선장(線裝) |
· 수량 | 6권(卷) 6책(冊) |
· 판식 | 반곽(半郭) 23.9×16.9cm |
· 인장 |
李王家圖書之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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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정보
내용
정의
본서는 1587년(선조 20)부터 1607년(선조 40)까지 임진왜란의 전말, 극복 과정, 전후 교섭 등을 기술한 책이다.서지사항
表紙는 紫色 종이로 장정되어 있다. 表紙書名은 그려진 四周 안에 ‘宣廟中興誌’라고 필사되어 있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禮·樂·射·御·書·數’라고 표기되어 있다. 본문은 木版 墨印札空冊紙에 필사되어 있다. 上版口에는 판심제가, 下版口에는 사건과 관계된 해의 干支가, 下魚尾 상단에는 張次가 기재되어 있다. 본문에는 朱色 또는 黑色의 교정 기록이, 上欄에는 頭註가 필사되어 있다. 필사자와 필사 시기는 알 수 없으나, 裝幀과 지질로 미루어 보아 조선 후기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체제 및 내용
본서는 몇 달 간격으로 간략히 기사를 적고 그 사이에 게재된 기사의 전말을 객관적인 태도로 상세히 기술하였다. 동일한 내용에 체제만 조금 다른 『壬辰錄』에는 저자가 丹室居士로 되어 있고, 그의 自序가 붙어 있으며, 자신이 편찬·저술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제1책은 1587년(선조 20) 9월에서 1592년(선조 25) 5월까지 일어난 일들을 다루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사신을 보낸 기사, 趙憲의 상소, 黃允吉·金誠一이 통신사로 일본에 간 일, 李舜臣의 등용, 임진왜란의 발발과 申砬의 패전, 왕의 播遷과 난의 과정 및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한 일 등이 쓰여 있다. 제2.3책은 1592년 6월에서 12월의 기록으로, 각지 의병의 활약과 이순신의 唐浦 승리, 선조가 의주에서 명나라에 병력을 요청한 일, 明軍의 來援과 평양 회복 등이 쓰여 있다. 제4책은 1593년(선조 26) 1월에서 1594년(선조 27) 11월까지의 기록으로, 權慄의 행주산성 전투,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의 화의, 왜군의 경성 철병, 이순신과 金德齡의 영남에서의 승전 및 金應瑞의 휴전 교섭 등이 쓰여 있다. 제5책은 1595년(선조 28) 1월에서 1597년(선조 30)의 기록으로, 元均이 충청병사로 활약한 일, 沈惟敬의 和戰 교섭, 통신사 黃愼의 일본 입국, 李夢鶴의 반란 등과 정유재란에 이어 원균의 패전 등이 쓰여 있다. 제6책은 1598년(선조 31)에서 1607년(선조 40)의 기록으로, 鄭起龍의 활약과 和戰, 노량대첩과 왜군의 철병, 姜沆의 귀환, 일본 請和使의 입국, 回答使의 送倭 등이 쓰여 있다. 끝으로 부록에 徐氏倭情錄·王氏倭術錄·姜睡隱沆倭情錄 등을 초록하여 실었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임진왜란의 경과와 역사적 의미를 서술하려는 의도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趙慶男의 『亂中雜錄』, 申炅의 『再造藩邦志』와 더불어 당시의 역사의식과 문학적 시각을 비교해 볼 만한 자료이다.참고문헌
『壬辰錄』
집필자
박재광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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