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자료명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저자 종부시(宗簿寺) 편(編)
자료명(이칭) 璿源系譜紀略 저자(이칭) [宗簿寺(朝鮮) 編]
청구기호 K2-1017 MF번호 MF35-6303~6304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傳記類/璿源譜/系譜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원문텍스트 이미지 장서각통합뷰어* 원문이미지 PDF

· 원문이미지

닫기

· PDF서비스

닫기

· 기본정보 해제 xml

닫기

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59(철종 10년)
· 청구기호 K2-1017
· 마이크로필름 MF35-6303~6304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종부시(宗簿寺)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5.3 X 24.6
· 판본 목판본(木板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7책(冊),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5×18.7cm

· 상세정보

닫기

내용

정의
종부시에서 증보한 왕실 보첩이다.
서지사항
K2-1017에는 모두 5종의 판본이 있다. K2-1017-1인 1859년(철종 10) 1월본은 제1~7책만 있는 결본이다. K2-1017-2인 1783년(정조 7)본은 제8책만 있는 결본이다. K2-1017-3인 1861년본은 완질본이다. K2-1017-4인 1789년본은 제1~7책만 있는 결본이다. K2-1017-5인 1858년 10월본은 제8책만 있는 결본이다. 이들 보첩의 표지는 파란 비단으로 되어 있다. 제첨은 책마다 붉은 비단 테두리를 두른 하얀 비단에 보첩의 제목이 필사되어 있으며, 목차 역시 붉은 비단 테두리를 두른 하얀 비단에 필사되어 있다. 첫 번째 책의 璿源先系와 列聖世系에 나오는 국왕의 휘 위에 붙은 붉은 첨지가 보존되어 있는 것은 1859년본뿐이며 1861년본과 1789년본에서는 붉은 첨지가 떨어져 나갔다.
체제 및 내용
K2-1017-2인 1783년본 제8책은 권13 원종자손록에서 권21 정조자손록까지와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문은 1679년 金錫胄의 것으로부터 1783년 李福源의 것까지 총 10편이 실려 있다.
1783년의 증보 사안은 『璿源系譜記略』 체제에 대한 것이다. 1783년 이전에 간행된 『璿源系譜記略』은 범례에 수정 증보 사안이 기재되어 있었다. 1783년 정조는 친히 서문을 짓고, 범례에 기재된 수정 증보 시기와 사안을 총서에 옮겨 적게 하였다. 범례는 따로 두어 보첩 편찬의 기본 원칙만 기재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필사되어 보관되었던 列聖八高祖圖를 璿源世系의 뒤에 붙였다. 정조가 보첩의 체제를 보완함으로써 서문, 총서, 범례, 璿源先系, 列聖繼序之圖, 列聖世系, 列聖八高祖圖, 자손록, 발문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총서에는 1782년(정조 6)에 태어난 원자를 이해에 왕세자로 책봉한 것과 보첩의 체제를 대폭 바꾸었다고 기록하였으나, 권21의 정조자손록에는 왕세자가 아니라 왕원자로 되어 있어 자손록은 수정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K2-1017-3인 1861년본의 체제는 서문, 총서, 범례, 璿源先系, 列聖繼序之圖, 璿源世系, 列聖八高祖圖, 자손록, 발문 등이다. 총서에는 1679년(숙종 5) 『璿源系譜記略』 초간부터 1861년까지 수정 보간된 시기와 사유를 기재하였다. 범례는 10조목으로 『璿源系譜記略』의 편찬 체제를 상세히 기술했다. 列聖八高祖圖는 태조부터 철종까지 왕의 팔고조도 35건이다. 왕 중에 생부모가 따로 있는 경우는 팔고조도가 두 장씩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자손록은 태조자손록에서 헌종자손록까지 총 24권이다. 발문은 1679년 김석주의 것으로부터 1861년 南秉哲의 것까지 총 41편이 실려 있다.
본 보첩의 璿源世系 내용은 총서의 연대와 일치하지 않는다. 총서에는 1859년 10월의 수정 사안까지 기재되어 있으나, 璿源世系에는 1862년(철종 13)의 증보 내용까지 반영되어 있다. 이것은 철종의 생모인 龍城府大夫人의 爵號를 개정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1861년(철종 12) 11월 부대부인의 작호를 ‘鈴原府大夫人’에서 ‘龍城府大夫人’으로 수정하였다. 부대부인의 작호 수정 사안은 1862년(철종 13) 수정 사안인 순조순조비 純元王后의 존호를 追上하고, 철종의 御眞을 봉안한 殿名을 증보하는 것과 함께 1862년에 시행되었다. 부대부인의 작호 수정은 1850년(철종 1)에 간행된 『璿源系譜記略』에서부터 1863년 이전까지 간행된 모든 『璿源系譜記略』이 대상이었다. 1862년 이전에 간행된 『璿源系譜記略』 철종어첩 36~44면을 일괄 改張하였다. 그러므로 1862년 이전에 간행된 『璿源系譜記略』은 총서의 수정 사안과 철종어첩의 내용이 일치할 수 없게 된 것이다.본 보첩의 증보 사안은 순조·순조비의 존호를 기재하는 것이다. 1860년(철종 11) 11월 철종은 시임·원임대신, 국구, 예조 당상을 소견하고 1862년순조가 즉위한 지 60년이 되는 해이므로 존호를 올리도록 하교하였다. 철종의 명에 따라 순조에게는 ‘乾始泰亨昌運弘基’라는 존호를, 순조비에게는 ‘洪化’라는 존호를 올렸다. 이 사안을 증보하고, 존호를 올렸기 때문에 남병철에게 발문을 새로 찬술하도록 하였다.
K2-1017-4인 1789년본 제1~7책은 서문, 총서, 범례, 璿源先系, 列聖繼序之圖, 列聖世系, 列聖八高祖圖, 자손록 12권이다. 총서에는 1679년(숙종 5) 『璿源系譜記略』 초간부터 1789년까지의 증보 시기와 사유를 기재하였다. 범례는 10조목으로 『璿源系譜記略』의 편찬 체제를 상세히 기술했다. 列聖八高祖圖는 태조부터 정조까지 왕의 팔고조도 29건이다. 왕 중에 생부모가 따로 있는 경우는 팔고조도가 두 장씩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자손록은 태조자손록에서 선조자손록까지 총 12권이다.
1789년 증보 사안은 사도세자의 묘인 永祐園수원으로 천장하고 園의 이름을 顯隆園으로 고친 것을 기재하는 것이었다. 영조어첩의 思悼世子條에 현륭원에 대한 사항을 기재하였다.
K2-1017-5인 1858년 10월본은 제8책으로 권13 원종자손록에서 권24 헌종자손록까지와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문은 1679년 김석주의 것으로부터 1858년 金炳學의 것까지 총 33편이 실려 있다.
1858년 10월본 증보 사안은 K2-1013을 참조하고, K2-1017-1인 1859년 1월본의 체제와 내용은 K2-1014와 K2-1013을 참조하면 된다.

참고문헌

璿源譜略修正儀軌』(奎14118),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조선 후기 선원보첩류의 편찬체제와 그 성격」, 원창애, 『장서각』 17, 장서각, 2007.

집필자

원창애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