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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왕묘의식(關王廟儀式)

자료명 관왕묘의식(關王廟儀式) 저자 장례원(掌禮院) 편(編)
자료명(이칭) 關王廟儀式 저자(이칭) 掌禮院(朝鮮) 編 , 장예원(조선) 편(掌禮院(朝鮮)編)
청구기호 K2-2423 MF번호 MF35-2909
유형분류 고서/기타 주제분류 史部/政書類/典禮/殿·宮·廟
수집분류 왕실/고서/한국본 자료제공처 장서각(SJ_JSG)
서지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전자도서관 해제 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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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항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99(광무 3년)
· 청구기호 K2-2423
· 마이크로필름 MF35-2909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단체/기관명 담당자 구분
장례원(掌禮院) 편(編)

형태사항

· 크기(cm) 37.0 X 28.5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7.5×20.8㎝
· 인장 掌禮院印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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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정의
1899년(광무 3)開城에 소재한 關王廟의 제향 비용과 執事 차출, 守直 등의 운영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한 자료이다.
서지사항
표지는 개장되었으나 개장 기록이 나타나지 않으며, 원표지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격지 하단부에 ‘關王廟儀式 單’이라고 기록된 첨지가 붙어 있다. 매 장마다 ‘掌禮院印’이 날인되어 있다. 어미가 없는 주사란에 반엽 6행 16자로 필사되어 있다. 제5장에는 啓字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조선시대 관왕묘가 처음 설치된 것은 1598년(선조 31) 4월로, 당시 명나라의 遊擊將 陳寅이 자신이 머물던 남산 기슭에 塑像을 세우고 사당을 창건하였다. 이는 임진왜란 중 關羽의 神靈이 여러 번 나타나 神兵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장수의 믿음 때문이었다.
이후 1601년(선조 34) 東關王廟가 조성되었고, 이후 경상도 星州를 비롯해 安東전라도 康津古今島, 南原 등지에도 설치되었다. 조선 후기 숙종 대 이후에는 관왕묘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증대하면서 廟制가 정비되고 정조 대에는 關廟樂章이 제정되기도 하였다. 관왕묘에 대한 관심은 19세기 전반 세도정치기에 다소 위축되었다가 고종 연간에 들어와 다시 고조되었다. 그 결과 서울에는 1883년(고종 30) 北廟, 1902년(광무 6) 西廟를 두었고, 지방에는 全州河東, 開城 등에 추가로 설치되었다. 고종관왕묘의 증설은 외세 침탈 등 불안한 국가 운영 속에서 軍神이자 財神인 관우가 외세를 배격해 주고 부국강병에 이르기를 바라는 인식의 산물이었다.
본서 역시 이 같은 상황에서 개성에 설치된 관왕묘의 운영과 관련된 각종 규정을 기록한 자료이다. 1899년 10월 5일에 작성된 것으로 掌禮院卿 趙秉弼(1835~1908)이 황제의 명령으로 찬술한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1899년 3월 2일(양력 4월 11일) 개성에 香祝을 봉송하는 일 등은 성주안동 등의 예대로 마련하고 해당 지방관이 제사를 행하라는 詔令을 시작으로, 이에 근거하여 해당 관서와 논의를 거쳐 享祀 비용 등으로 水蔘稅錢 중 8천 냥을 매년 획급하기로 결정한 사실과 이의 집행 등과 관련된 절목 3건을 만들어 1부는 장례원에, 1부는 內藏院에, 1부는 개성 관왕묘로 보낸다는 사실을 적기하였다.
이때 작성된 절목의 내용은, ① 驚蟄이나 霜降 때의 제향에는 개성 부윤이 헌관이 되고 縉紳 중에서 제집사를 차출할 것, ② 탄일이나 기신 및 12차례 節享 때의 헌관과 제집사는 社員 중에서 차출할 것, ③ 각 제항의 헌관과 제집사는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여 거행할 것, ④ 守直 등은 사원이 돌아가면서 거행할 것, ⑤ 수삼세전 중 8천 냥은 매년 10월에 包所에서 관왕묘에 수납할 것 등이다. 이어 ⑥ 8천 냥의 지출 항목을 규정하였는데, 수라 비용 1,440냥, 경칩과 상강 향사 비용 각 300냥, 탄일과 기신제 등의 향사 비용 각 200냥, 12차례 절향 비용 각 150냥, 燈油香炭費 360냥, 齋房과 守僕房의 柴油費 각 240냥 등이다. 이 밖에도 ⑦ 8천 냥을 수납 후 捧標를 市廛에게 줄 것, ⑧ 당해 연도는 10월에 수납할 것, ⑨ 미진한 조항은 추후에 마련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고종 연간 관왕묘의 운영 실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고종 연간 불안한 대내외적인 상황 속에서 관우에 대한 신앙이 강조되었는데, 본서는 이 같은 시대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주요한 단서가 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심승구, 「조선후기 무묘의 창건과 향사의 정치적 의미」, 『조선시대의 정치와 제도』, 집문당, 2003.

집필자

이근호
범례
  • 인명
  • 관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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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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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