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구(準戶口)
· 서지정보 서지 xml
한글문서명 | 준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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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서명 | 準戶口 |
이명(한글) | |
이명(한자) | |
수취(한글) | 한성부 |
수취(한자) | 漢城府 |
발급(한글) | 박흥신 |
발급(한자) | 朴興新 |
찬자(한글) | 미상 |
찬자(한자) | 미상 |
발급목적 | 漢城府에서 발급한 朴興新의 준호구 |
간행년(서기력) | 肅宗37 1711 - |
유형 | 고문서 |
크기 | 58x115.5cm |
관인수 | |
청구기호 | |
소장처 | 원소장처와 동일 |
소장처1 | 忠淸南道 |
소장처2 | 扶餘郡 |
소장처3 | 恩山面 佳谷里 朴柄鎬 |
MF | 35-008155 |
자료유형 | 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
해제정보
해제작성자 | 정수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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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작성일 | 2002-05-28 |
한글문서명 | 호적류10 |
한자문서명 | 戶籍類10 |
간행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해제작성언어 | 국한문 혼용 |
해제내용 |
호적류10
정수환
【정의】
1703년(肅宗29)에 漢城府에 거주하는 박상욱이 작성한 호구단자
【내용】
[주제]
한성부 南部의 薰陶防 鑄字洞契에 거주하는 박상욱이 1703년 肅宗29년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본 호구단자는 ‘周挾字改印’과 ‘官印’ 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박상욱이 작성한 후 한성부에 제출하지 않은 문서인지, 혹은 한성부에 제출 한 후 관으로부터 되돌려 받은 문서인지 확신하기 곤란한 점이 있다. 그러나 본 호구단자를 통해 肅宗 연간에 한성부에 거주한 한 士族의 가족 형태 및 奴婢소유를 중심으로 한 家産규모를 살펴 볼 수 있다. 본 호구단자를 중심으로 한 호주 박상욱의 가계를 살펴보면 증조 朴知述에서 시작해 祖는 朴由恭, 父는 朴宗亨이었다. 특히 증조에서 시작해 父 박종형에 이르는 선대는 모두가 중앙정계의 고관요직을 역임하고 있다. 물론 호주 박상욱 역시 ‘折衝將軍前僉知中樞府事’로서 堂上官을 지내고 있다. 그의 처는 陽川許氏였으며, 처의 4조역시 중앙정계의 고관을 지속적으로 역임하고 있었다. 노비에 대한 기록 중 逃亡奴婢秩에 대한 기록을 검토해 볼 때 도망노비의 수는 대략 30여구를 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買得奴에 대한 기록은 노비매매의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 일반적으로 자세한 노비소유 현황을 기재하고 있다.
[용어]
折衝將軍은 正三品 堂上官에 해당하는 西班(武官)職이다. 노비에 대한 기록 중 ‘還現’은 도망하였다가 다시 돌아온 노비를 지칭한다.
[인물]
[지명]
【특징】
【비고】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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