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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서6(請願書6)

자료명 청원서6(請願書6) 저자 조선총독백작사내정(朝鮮總督伯爵寺內正)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35-008154
유형분류 고문서/기타 주제분류 기타
수집분류 민간/기증·기탁·조사/고문서 자료제공처 디지털아카이브(SJ_ARC_BB)
서지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디지털아카이브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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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서명청원서6
한자문서명請願書6
이명(한글)
이명(한자)
수취(한글)박동익
수취(한자)朴東翼
발급(한글)조선총독백작사내정
발급(한자)朝鮮總督伯爵寺內正
찬자(한글)미상
찬자(한자)미상
발급목적墓地 移葬 訓令의 還收 요청
간행년(서기력)大正4   1915 -
유형고문서
크기26x17cm
관인수
청구기호
소장처원소장처와 동일
소장처1忠淸南道
소장처2扶餘郡
소장처3恩山面 佳谷里 朴柄鎬
MF35-008154
자료유형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해제정보

해제작성자박경
해제작성일2002-05-23
간행처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제작성언어국한문 혼용
해제내용
請願書6
박경
【정의】
1915년 박동익이 아버지 묘를 이장하도록 한 처사가 부당하다고 총독에게 호소한 청원서
【내용】
[주제]
박동익이 황해도 평산군 여주동에서 거주할 때 냉정동 뒤 산판 한 지역을 점유하였고, 삼림령이 내려진 후에 이를 신고하였다. 박동익은 1907년에 아버지를 이곳에 장사지냈는데, 이용직이 자기 아버지의 묘를 박동익 아버지 묘 아주 가까이에 쓰고자 하여 박동익이 이를 허락하였다. 그런데, 1914년 이용직이 이 산판을 농상공부에서 매입하였고 총독부 훈령으로 삼림령 이후에 이곳에 장사지낸 사람은 모두 이장하도록 하였다. 이에 박동익이 총독에게 이러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 글이다.
[용어]
[인물]
이용직(1852~1932)은 187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조참판, 내무협판, 학부협판, 학부대신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았으나, 1919년 3․1 운동 때 조선 독립 청원서 사건으로 작위를 박탈당하였다.
[지명]
【특징】
이는 삼림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산송으로 일제가 삼림령으로 수탈한 산지를 조선 고위층 인사에게 매수하였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비고】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