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시권7(試券7)

자료명 시권7(試券7) 저자 미상(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유형분류 고문서/기타 주제분류 기타
수집분류 민간/기증·기탁·조사/고문서 자료제공처 디지털아카이브(SJ_ARC_BB)
서지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디지털아카이브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 서지정보 서지 xml

닫기
한글문서명시권7
한자문서명試券7
이명(한글)
이명(한자)
수취(한글)미상
수취(한자)미상
발급(한글)미상
발급(한자)미상
찬자(한글)이기원
찬자(한자)李紀元
발급목적李紀元의 43세시 시권
간행년(서기력)高宗9   1872 -
유형고문서
크기63x158cm
관인수
청구기호
소장처원소장처와 동일
소장처1경상북도
소장처2경주시
소장처3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MF
자료유형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해제정보

해제작성자김채식
해제작성일2002-07-10
간행처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제작성언어국한문 혼용
해제내용
試券7
김채식
【정의】
於思叔子也尤深 賦. 慶州의 幼學 李紀元이 43세(1872년)에 進士시에 응시한 시험답안.
【내용】
[주제]
晉나라 때의 백성들이 叔子를 더욱 그리워하였다는 내용의 부이다. 叔子는 羊祜의 字인데 훌륭한 인품으로 공적을 세워 명망이 높았던 관리이다. 그리고 자신의 후임으로 杜預라는 훌륭한 장수를 천거하여 아름다운 미담을 남겼다. 부의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대들은 杜預를 좋아하나 나는 양호를 사랑한다. 은택이 지금도 부로들에게 전해지고 있고, 특히 襄陽의 峴山에서 치적이 탁월하여 백성들이 세워 준 비석이 지금도 눈물짓게 한다. 양호는 공적도 훌륭하지만 어진 마음을 중시하여 누구나 흠모하여 감격하였는데, 특히 그의 仁德은 백성을 사랑할 때 더욱 빛났다. 양호는 가벼운 가죽옷으로 검소하게 지내면서 군사들을 잘 먹이니 적들의 마음도 우리에게 쏠렸고, 江水․漢水가 씻어주듯 가르치고 감싸주니 백성들은 남긴 옷을 볼 때마다 양호를 더욱 그리워하였다. 峴山의 정자에 양호와 두예를 기리고 있는데, 그 공적을 말하면 똑같다. 그런데 양양의 부로들이 눈물짓고, 남쪽의 오랑캐가 덕을 칭송하기로는 양호에게서 더욱 간절하다. 문필에도 뛰어났고 강물처럼 은택의 물결이 그침이 없으며 초목에까지 미쳐 지금도 칭송되니, 천년 후에도 영원할 것이다. 이제와 옛날을 회고하면 양호야말로 賢者라 이를 만하다. 이는 뚜렷한 실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천년 후에 무릎을 치며 성대한 글을 지어 탄식한다.
[용어]
[인물]
李紀元(1830~?): 자는 春敷, 호는 省齋이다. 驪州李氏 23세로 求菴公 浚으로부터 10세, 李壽聃으로부터는 6세 후손이다. 成均進士로 文學과 孝友를 겸비하였다. 부인은 仁同 張氏 希旭의 따님이다.
羊祜: 晉나라 泰山 南城사람. 자는 叔子, 荊州의 都督이 되었을 때, 학교를 열어 원근의 백성을 진무하여 인심을 크게 얻었다. 襄陽을 다스렸을 때에는 그의 공덕에 감격한 백성들이 峴山에 비석을 건립하였다. 검소하여 늘 가벼운 가죽 갖옷을 입었고, 이후 여러 벼슬을 지내며 공을 세웠으면서도 겸손한 마음을 지녀 내외의 명망이 높았다. 자신의 후임으로 훌륭한 장수인 杜預를 천거하였다.
杜預: 晉나라 사람. 자는 元凱, 시호는 成. 吳나라를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말년에는 經籍에 전념하여 ꡔ春秋左傳集解ꡕ를 지어 후대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지명]
【특징】
시권의 앞부분에 ‘五然(?)’이란 글씨가 적혀 있고, 중간 부분에 ‘次上’이란 성적이 朱墨으로 적혀 있다.
【비고】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