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시권2(試券2)

자료명 시권2(試券2) 저자 미상(미상)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유형분류 고문서/기타 주제분류 기타
수집분류 민간/기증·기탁·조사/고문서 자료제공처 디지털아카이브(SJ_ARC_BB)
서지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디지털아카이브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 서지정보 서지 xml

닫기
한글문서명시권2
한자문서명試券2
이명(한글)
이명(한자)
수취(한글)미상
수취(한자)미상
발급(한글)미상
발급(한자)미상
찬자(한글)미상
찬자(한자)未詳
발급목적인명 미상의 시권
간행년(서기력)미상   미상 -
유형고문서
크기38x136cm
관인수
청구기호
소장처원소장처와 동일
소장처1경상북도
소장처2경주시
소장처3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MF
자료유형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해제정보

해제작성자김채식
해제작성일2002-07-10
간행처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제작성언어국한문 혼용
해제내용
試券2
김채식
【정의】
執鞚止擧眞賦, 擬齊檀子等謝於郊田之會稱以四臣將照 千里不特照車十二乘箋. 성명 미상인의 과거 시험 답안으로 賦와 箋 각 1편.
【내용】
[주제]
賦는 丕寧子와 그의 아들 擧眞과 노예 合節의 충직을 읊은 것이다. 제목은 ‘고삐를 잡고 거진을 만류한다’는 뜻이다. 대체적인 내용은 647년 백제가 공격해 와 신라군이 수세에 몰리자 김유신은 비녕자에게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라고 명하였다. 이에 비녕자는 知遇를 입음에 감격하여 집안을 잘 보살피라는 당부를 어린 아들인 거진과 노예 합절에게 남기고 출전하여 전사하였다. 부친의 죽음을 본 거진 또한 분격에 못 이겨 출전하려고 하자 합절은 주인의 유언을 받은 터라 고삐를 잡고 간곡한 말로 거진을 타이른다. 그러나 거진은 칼로 합절의 팔을 자르고 출전하여 장렬히 전사하였다. 합절 또한 주인이 죽으면 종도 죽는다는 의리에 따라 용감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를 본 신라의 三軍은 사기가 올라 백제를 대파하였고, 임금은 세 사람의 충절을 높이 기렸다. 비녕자, 거진, 합절 세 義士의 죽음은 이에 역사에 기록되어 끊임없이 탄식을 자아내게 되었다는 취지를 5언 70구로 읊었다. 箋은 ꡔ史記ꡕ 「田敬仲完世家」에 나오는 故事의 의미를 묻는 문제로 보인다. 전국시대에 齊나라 威王이 趙王과 회동할 때, 조왕이 자신의 나라에 수레 12대의 거리를 밝히는 夜光珠가 있다고 하면서 제나라에 어떤 보물이 있냐고 묻자, 제나라 왕은 자신의 나라에는 구슬과 같은 보물은 없고, 檀子․肦子․黔夫․種首 네 사람이 제나라를 굳건히 지켜 능히 천 리를 비추니 수레 12대를 겨우 비추는 야광주 따위로 비교할 보물이 아니라는 취지로 대답하였다. 이 시권에서는 임금이 인재를 소중히 여긴다면 신하들이 흰머리가 되도록 一片丹心을 임금께 바칠 것이니 인재를 소중히 여기라는 취지로 대답하였다.
[용어]
箋은 과거 시험의 문체 중의 하나이다. 본래 ‘牋’과 통용하는데, 자기의 의사를 남에게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중국에서는 천자나 태자 등에게 올리는 서장을 모두 箋이라 하였다. 조선에서는 중국천자에게 올리는 글을 表, 우리나라 임금이나 중궁전에 올리는 글을 箋이라 하였다. 전은 흔히 변려문을 쓰는 것이 관례이나 산문도 있다. 변려문이란 4, 6자를 조합하여 나란히 운율에 맟추어 서술해 나가는 한문학에서 표현이 가장 세련된 양식이다.
[인물]
丕寧子(?~647)는 신라 진덕여왕 때의 용사로 자세한 인적사항은 알 수 없다. 擧眞(?~647)은 비녕자의 아들. 合節(?~647)은 비녕자의 종.
[지명]
【특징】
【비고】
우측 여백 하단에 ‘四往’과 ‘三中’이란 글씨가 씌어 있는데, 시험 성적을 적은 것으로 보이나 합격 여부는 알 수 없다.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