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1(書畵1)
· 서지정보 서지 xml
한글문서명 | 서화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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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서명 | 書畵1 |
이명(한글) | |
이명(한자) | |
수취(한글) | 미상 |
수취(한자) | 미상 |
발급(한글) | 미상 |
발급(한자) | 미상 |
찬자(한글) | 미상 |
찬자(한자) | 未詳 |
발급목적 | [玉山書院](楷書大字) |
간행년(서기력) | 미상 미상 - |
유형 | 고문서 |
크기 | 160x55cm |
관인수 | |
청구기호 | |
소장처 | 원소장처와 동일 |
소장처1 | 경상북도 |
소장처2 | 경주시 |
소장처3 | 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
MF | |
자료유형 | 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
해제정보
해제작성자 | 김새미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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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작성일 | 2002-07-10 |
간행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해제작성언어 | 국한문 혼용 |
해제내용 |
書畵1
김새미오
【정의】
옥산서원의 편액글씨이다.
【내용】
[주제]
사적 154호 옥산서원은 晦齋 李彦迪의 유덕이 서린 곳으로 안강읍에서 서북쪽으로 약 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화개산, 자옥산, 무학산, 도덕산 등 4개의 명산이 둘러싸고 있는 명당에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증심대, 탁영대, 관어대, 영귀대, 영심대 등 五臺로 불리는 반석이 계곡을 꾸미고 있어서 예로부터 4산 5대의 경승지로 꼽혀왔다.옥산서원은 회재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20년이 된 후인 1572년(선조5)에 慶州府尹 李齊閔과 회재의 高弟 權德麟 등 道內儒林들의 共議로 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서원자리를 정하고 廟宇를 건립하였다. 다음 해에 서악의 향현사에 있던 위패를 모셔 왔으며, 같은 해에 관찰사 金繼輝가 계청하여 1574년(선조7)에 ‘玉山’이라는 賜額을 받아 書院으로 승격되었다. 최초 사액은 鵝溪 李山海의 글씨였으나 1838년(헌종4)에 구인당이 화재를 입어 다시 사액을 받았으며, 현존하는 글은 秋史 金正喜의 글씨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體仁廟로 현액된 묘우를 비롯하여 求仁堂, 闇修齋, 敏求齋, 無邊樓, 亦樂門,神道碑閣, 經閣, 板閣, 祭器室, 御書閣, 正大門, 上堂, 體仁門, 洗心門, 監牲門 등이 있다. 또한 1972년에는 淸芬閣을 새로 짓고 보물 제525호로 지정된 ꡔ삼국사기ꡕ를 비롯하여 총 866종 4,111권의 서책을 어서각, 경각 등에서 옮겨 소장 보관하고 있다. 大字 옆 낙관에는 서원안에 편액으로 모사하여 한 장은 서원에 두고 한 장은 無忝堂에 보냈으며 한 장은 계정으로 보냈는데 애석하게도 진본은 잃어버렸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용어]
[인물]
無忝堂 李宜潤(1564-1597): 晦齋 李彦迪의 서손이며 자는 粹然, 호는 無忝堂, 綸巖이다. 寒岡 鄭逑의 문하로 순조 대에 문집이 출간되었다.
[지명]
【특징】
역봉으로 시작하여 收筆할 때에 붓끝을 누르면서 힘있게 거두어 들인 것이 보인다. 운필이 빠른 듯하면서도 획이 가볍지 않고 무게 감이 있어 대가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비고】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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