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찰191(簡札191)
· 서지정보 서지 xml
한글문서명 | 간찰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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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서명 | 簡札191 |
이명(한글) | |
이명(한자) | |
수취(한글) | 노재응 |
수취(한자) | 盧載應 |
발급(한글) | 이기원 |
발급(한자) | 李紀元 |
찬자(한글) | 미상 |
찬자(한자) | 미상 |
발급목적 | 진사시 합격을 축하함 |
간행년(서기력) | 高宗10 1873 - |
유형 | 고문서 |
크기 | 29x47cm |
관인수 | |
청구기호 | |
소장처 | 원소장처와 동일 |
소장처1 | 경상북도 |
소장처2 | 경주시 |
소장처3 | 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
MF | |
자료유형 | 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
해제정보
해제작성자 | 문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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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작성일 | 2002-07-10 |
간행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해제작성언어 | 국한문 혼용 |
해제내용 |
簡札191
문순요
【정의】
노재응(盧載應)이 여주이씨(驪州李氏) 옥산파(玉山派)집안에 진사의 합격을 축하하는 편지이다.
【내용】
[주제]
진사에 합격하여 마을을 조금 빛냈으니 이를 축하하며, 자신은 여러 달 동안 수하(手下)의 애들 걱정에 골머리가 아팠는데 마침내 젖먹이 어린 손자가 죽었고, 내 몸도 전염병을 겪고 나서 귀가 어둡고 눈도 어둡다는 내용이다
[용어]
독낙당(獨樂堂)은 1532년(중종 27)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나이 42세 때 자옥산(紫玉山)에 건립하였다. 양좌동(良佐洞)에서 서쪽으로 20리 쯤에 위치해 있는데 선생이 학문을 도야했던 정자이다. 독낙당 옆에 탁영대(濯纓臺)․징심대(澄心臺)․관어대(觀魚臺)․영귀대(詠歸臺)․세심대(洗心臺) 5곳의 대(臺)가 있다. 독낙당의 제1간(間)은 정관재(靜觀齋), 제2간(間)은 계정(溪亭)이고, 계정의 앞뒤에는 소나무, 대나무, 화초를 심었으며, 날마다 그 곳에서 읊조리고 낚시하며 분분한 속세를 떨쳐버렸으며, 단정히 앉아 좌우에 책을 쌓아 놓고 조용한 가운데 공부하기를 선배들 보다 더욱 깊게 학문에 전념하였다. 조춘유산(早春遊山)․우영(偶詠) 등 시구(詩句)가 있다.
[인물]
[지명]
【특징】
【비고】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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