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l:./treeAjax?siteMode=prod}

간찰184(簡札184)

자료명 간찰184(簡札184) 저자 독락당(獨樂堂)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유형분류 고문서/기타 주제분류 기타
수집분류 민간/기증·기탁·조사/고문서 자료제공처 디지털아카이브(SJ_ARC_BB)
서지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디지털아카이브
원문텍스트 디지털아카이브 이미지 디지털아카이브

· 서지정보 서지 xml

닫기
한글문서명간찰184
한자문서명簡札184
이명(한글)
이명(한자)
수취(한글)정최휘
수취(한자)鄭最輝
발급(한글)독락당
발급(한자)獨樂堂
찬자(한글)미상
찬자(한자)미상
발급목적潛溪遺稿의 간행과 반질을 축하함
간행년(서기력)戊申   미상 -
유형고문서
크기40x29.2cm
관인수
청구기호
소장처원소장처와 동일
소장처1경상북도
소장처2경주시
소장처3安康邑 玉山1里 1600番地 李海轍
MF
자료유형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해제정보

해제작성자이성주
해제작성일2002-07-10
간행처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제작성언어국한문 혼용
해제내용
簡札184
이성주
【정의】
무신년 2월 1일에 봉계(鳳溪)의 정최휘(鄭最輝)가 안부를 전하고, 노경(老境)에 접어든 자신은 징심대(澄心臺)와 영귀정(詠歸亭)을 찾아 며칠 지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이어 ꡔ잠계공유고(潛溪公遺藁)ꡕ를 간행하여 배포한 것을 경하(慶賀)하는 편지.
【내용】
[주제]
지난 겨울 종질(從侄)이 오천(烏川)에 갔다가 돌아와서 계정(溪亭)을 들러 집사(執事)를 만나 소식을 들었노라고 서로 문안인사를 하고, 이어서 자기는 병이 심하여 앞일을 알지 못하겠으니 어떻게 다시 징심대(澄心臺)와 영귀정(詠歸亭)을 며칠 서성이며 전날에 못 다한 회포를 풀겠느냐며 아쉬운 심정을 말했다. 그리고 ꡔ잠계공유고(潛溪公遺藁)ꡕ가 간행되어 배포하니 선조를 받드는 지극한 정성이 넓게 퍼지게 된 것을 더욱 고맙게 생각한다는 사연이다.
[용어]
신원(新元)은 음력 정월(正月)을 말하고, 영윤(令胤)의 상대의 아들을 가리킨다. 징심대(澄心臺)는 독락당의 계정을 받치고 있는 시냇가의 반석인 관어대(觀魚臺)에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이고, 영귀대(詠歸臺)는 관어대에서 동쪽으로 약 70m 떨어진 언덕에 있는 바위이다.
[인물]
잠계(潛溪:1516, 중종11~1568, 선조 1)는 회재선생의 서자로 이름은 전인(全仁), 자는 경부(敬夫), 잠계는 호이다. 어려서부터 기질이 온아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잠시도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받들었다고 한다.
[지명]
오천(烏川)은 안동에 있는 지명으로 광산(光山) 김씨의 세거지(世居地)이다. 봉계(鳳溪)는 정씨들이 살던 곳이다.
【특징】
【비고】
ꡔ잠계공유고(潛溪公遺藁)ꡕ는 회재선생의 후손인 이질(李耋) 등이 1847년(憲宗 13)에 간행하였다. 유고의 내용은 한시(漢詩)와 「서천잠(誓天箴)」, 1566년(명종21년) 8월에 잠계공(潛溪公)이 상소(上疏)를 작성하여 회재(晦齋)선생이 저술한 「진수팔규(進修八規)」와 함께 명종에게 올린 「헌진수팔규소(獻進修八規疏)」와 이에 크게 감오(感悟)한 명종이 회재(晦齋)선생의 관작(官爵)을 회복하고, 이어 1568년 (선조 원년, 무진) 2월에 회재선생에게 증직(贈職)을 내리는 한편 잠계공(潛溪公)에게도 판사(判事)를 내리는 은전을 베풀었으나, 공(公)은 나가지 않고 올린 「사은소(謝恩疏)」가 실려있다. 부록으로 제현(諸賢)의 시문(詩文)과 간독(簡牘), 행장(行狀)과 묘지(墓誌), 「장산서원 봉안문(章山書院奉安文)」과 「상향축문(常享祝文)」 등이 실려 있다.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08.16
해제작성,입력,교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