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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명(墓誌銘)

자료명 묘지명(墓誌銘) 저자
자료명(이칭) 저자(이칭)
청구기호 MF번호 10308-10316
유형분류 고문서/기타 주제분류 기타
수집분류 민간/기증·기탁·조사/고문서 자료제공처 디지털아카이브(SJ_ARC_BB)
서지 디지털아카이브 해제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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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서지 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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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서명묘지명
한자문서명墓誌銘
이명(한글)
이명(한자)
수취(한글)#
수취(한자)#
발급(한글)#
발급(한자)#
찬자(한글)임영
찬자(한자)林泳
발급목적회곡 조한영의 묘지명이다.
간행년(서기력)미상   미상 -
유형고문서
크기#cm
관인수없음
청구기호
소장처원소장처와 동일
소장처1서울시
소장처2동작구
소장처3사당동 임형택
MF10308-10316
자료유형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해제정보

해제작성자김새미오
해제작성일2002-04-15
간행처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해제작성언어국한문 혼용
해제내용
嘉善大夫京畿觀察使夏興君曹公墓誌銘幷書
김새미오
【정의】
회곡 조한영의 묘지명이다.
【내용】
[주제]
회곡 조한영의 생애와 가족관계, 학승관계를 손자사위인 임영이 썼다. 자세한 사항은 인물편 참고할 것.
[용어]
[인물]
晦谷 曹漢英(1608~1670) 字는 守而, 號는 晦谷, 本貫은 昌寧, 工曹參判 文秀의 아들. 李植•金長生의 門人으로 1627년(仁祖 5)에 生員이 되고 1637년 庭試文科에 壯元으로 급제, 典籍•江 原道都事•兵曹正郞 등을 거쳐 1640년 持平으로 萬言疏를 올려 淸이 明을 공격하기 위하여 援兵 派遣과 元孫을 볼모로 瀋陽에 보내라는 요청에 반대하여 排淸派로 金尙憲등과 瀋陽에 잡혀갔다가 석방되었다. 그후 禮曹正郞, 持平 등을 역임하였고 孝宗 때에는 南人인 尹鐫의 등용을 반대하다 면직되었다. 顯宗 때 漢城府右尹이 되어 夏興君에 襲封되었으며 刑曹와 禮曹의 參判•京畿道觀察使를 거쳐 漢城府左尹에 이르렀다. 滄溪 林泳(1649~1696) 자는 德涵, 호는 滄溪, 본관은 羅州, 僉知中樞府事 一儒의 아들이다. 李端相 朴世采의 門人으로 1665년(顯宗 6) 17세로 司馬試에 합격, 1671년(顯宗 12) 庭試文科에 乙科로 합격한 후 賜暇讀書했다. 그후 吏曹正郞, 大司憲, 全羅道觀察使, 開城府留守, 參判을 지냈다. 經史에 정통하고 文章이 뛰어 났으며 宋時烈•宋浚吉에게도 배운 바 있는 畿湖學派의 학자였으나 理氣說에 있어서는 李珥의 理氣一元論에는 찬성하고 氣發理乘說에는 反對했다. 羅州의 滄溪書院, 咸平의 水山祠에 祭享되었다.
[지명]
【특징】
【비고】
【참고문헌】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3.04.15
해제작성,입력,교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