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명(墓誌銘)
· 서지정보 서지 xml
한글문서명 | 묘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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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서명 | 墓誌銘 |
이명(한글) | |
이명(한자) | |
수취(한글) | # |
수취(한자) | # |
발급(한글) | # |
발급(한자) | # |
찬자(한글) | 미상 |
찬자(한자) | 未詳 |
발급목적 | 通德郞 曹建周의 墓誌銘. |
간행년(서기력) | 미상 미상 - |
유형 | 고문서 |
크기 | #cm |
관인수 | 없음 |
청구기호 | |
소장처 | 원소장처와 동일 |
소장처1 | 서울시 |
소장처2 | 동작구 |
소장처3 | 사당동 임형택 |
MF | 10308-10316 |
자료유형 | 전통명가소장고문서자료(전통시대지방사회경제사자료) |
해제정보
해제작성자 | 김봉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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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작성일 | 2003-07-01 |
간행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해제작성언어 | 국한문 혼용 |
해제내용 |
墓誌銘
김봉좌
【정의】
通德郞 曹建周의 墓誌銘.
【내용】
[주제]
통덕랑 창녕 조건주(1637-1656)의 묘지명이다. 조건주의 부, 조부, 증조부에 대해 먼저 언급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경기관찰사 夏興君 曹漢英, 공조참판 夏寧君 曹文秀, 주부 증 이조참판 夏山君 曹景仁이 그의 조상이다. 그리고 조건주의 처인 平山 申氏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는데, 부인은 영의정 申景禎의 증손이자 판서 申埈의 손녀이고 증 좌승지 申汝挺의 딸임을 밝혔다. 그리고 신씨부인이 조건주에게 시집 간 지 겨우 7년 만에 조건주가 죽었기 때문에 두 딸만 낳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조건주의 아우인 曹憲周가 종사를 이었다는 것과 두 딸 중 장녀는 林泳에게 시집갔고, 차녀는 趙明道에게 시집갔다는 등 그 후손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용어]
墓誌는 죽은 사람의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일시, 행적, 무덤의 방향 등을 적어 무덤 앞에 묻은 돌이나 도판(陶板)과 거기에 새긴 글로, 광지(壙誌)라고도 한다. 나중에 무덤의 형태가 바뀌더라도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있도록 매장할 때 넣어주는 것이 보통이다.
通德郞은 조선시대 문신 정5품 上階의 품계명이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정5품 상계는 통덕랑, 하계는 통선랑으로 정하여져 ≪경국대전≫에 그대로 법제화되었다. 정5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검상(檢詳)·정랑·지평(持平)·사의(司議)·헌납(獻納)·시독관(侍讀官)·교리(校理)·직장(直長)·기주관(記注官)·찬의(贊儀)·별좌·문학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통덕랑 이하는 郎品階로서 士라고도 불렀다.
[인물]
조건주(曹建周)는 임영(林泳; 1649-1696)의 장인으로, 1637(仁祖 15)년 1월 9일에 태어나 병을 앓아 1656년 8월 12일에 요절하였다.
〔지명〕
【특징】
【비고】
【참고문헌】
[작성정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3.07.01 해제작성,입력,교정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작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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